조하나 밴드 플라원 기타리스트

중학교 2학년. 친구가 5주 뒤 열리는 축제에 함께 올라갈 밴드부원을 모집하길래 기타를 하겠다고 했다. 기타를 한 번도 연주해 본 적 없었는데 말이다. 축제 때 연주할 곡으로는 ‘말달리자’가 있었다. 당시에 친구들과 노래방 가면 노래에 대놓고 ‘닥쳐’라는 비속어가 들어가 있어서 노래방에서만 허용된 유일한 마약 같은 노래. 학교 축제에서 전교생과 선생님이 다 보는 무대에서 연주하다니 이거 괜찮은 건가?. 명찰 없이 교문 통과 했는데 학주쌤한테 들키지 않은 것 같은 찌릿함이 느껴졌다. 기타를 메고 다닐 때면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이 연습보다 더 힘들었던 내향인. 심지어 밴드 공연은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갔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와 함성이 신기하고 찌릿했다. 인생 첫 번째 공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처음 느껴본 기분 좋음. 그길로 바로 크라잉넛 덕후가 되었고, Punk 장르에 빠졌다. 크라잉넛을 먼저 좋아하고 있던 친구에게 MP3 파일을 전달받았다. 다른 또래 친구들이 ‘동방신기’, ‘쥬얼리’를 들을 때 ‘그린데이’, ‘너바나’, ‘blur’ 앨범을 다운 받아 ‘락앤롤’ 바이브로 컴퓨터 하드를 채웠다. 나를 학창 시절로 데려다주는 크라잉넛의 노래. 오늘은 나의 학창 시절 최애 아티스트. ‘크라잉넛’ 노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크라잉넛 - 밤이 깊었네
고등학교 시절 지하 연습실에서 나와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많이 들었던 노래. 환하게 켜진 가로등 불빛이 버스 창문에서 하나둘 뒤로 지나가는 걸 보면서 ‘가지마라 가지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라는 가사를 들으면 가슴에 메여 찡해졌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오늘 채우지 못한 연습, 내일 학교 가서 버텨야 하는 시간 들에 대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속상한 마음에 술 한잔 마시면 생각나는 노래. ‘가지마라 가지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 가사에 눈물을 담아 소리 질러 부르던 내 위로송.
◆크라잉넛 – 명동콜링
대학 입시를 위해 재즈 음악을 공부해야 했다. 고1로 올라가면서 크라잉넛으로 가득했던 플레이리스트가 재즈로 바뀌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3년 만에 돌아온 크라잉넛 앨범을 모른 척할 수가 있단 말인가! ‘OK 목장의 젖소’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명동콜링’. 여름에 나온 앨범이지만 ‘크리스마스 저녁 명동거리’라는 가사 때문인지, 겨울을 상상하면서 들었다. 특별히 나만 알고 싶었던 명곡은 아니었지만, 카더가든이 부르면서 더 유명해진 ‘명동콜링’. 노래가 나올 때마다 “이거 크라잉넛이 원곡이잖아”라고 먼저 선빵치면 사람들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보고 속으로 뿌듯해한 크라잉넛 덕후. 올해 크리스마스 오기 전부터 미리 듣는 내 캐럴.
◆크라잉넛 – 뜨거운 안녕
‘말 달리자’, ‘밤이 깊었네’, ‘룩셈부르크’, ‘좋지 아니한가’ 등 다양한 명곡들 사이에 살짝 가려져 있는 크라잉넛의 ‘뜨거운 안녕’. 신나고 경쾌한 리듬과 대충 들으면 밝은 가사 때문에 즐거운 노래 같지만, 사실 이별 노래인 아이러니한 노래. ‘야단났네’ 부분에서 총 쏘는 것같이 뚜드리는 드럼 필인도 좋고, 가사 내용도 대충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속 시원한 노래. 여튼 이별도 유쾌하게 풀어내는 크라잉넛의 매력을 또 느낄 수 있는 노래다.
중학교 2학년. 지하 합주실이 열기로 가득 차서 땀범벅이 되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을 들러서 컵라면을 먹고 추운 겨울에도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면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그 추억으로 데려다주는 크라잉넛의 노래. 큰 문제 없이 무난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왔는데, 소심하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던 반항적인 내용의 가사들과 약간의 욕설, 겉으론 내성적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롹킹한 사운드가 위로하고 대변 해주는 것만 같아서, 학창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을 때가 많다. 오늘처럼 크라잉넛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 시절을 잘 보냈구나 하고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할 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미래의 내가 날 다독이는 날이 오겠지.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밤이 깊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