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신문 기자에게 시·도청과 구청은 굉장히 큰 출입처다. 그래서 기자와 공무원은 좋든 싫든 많은 걸 함께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꽤 흐르면 별의별 이야기를 나눈다. 대개 서로의 회사가 ‘더 안 좋다’라는 푸념을 늘어놓는 게 대부분이다. 언론사에선 급여, 공무원은 인사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시·도청을 출입하며 인사에 대한 불만이 너무 많이 늘었다. 단순한 불만으로 치부하기엔 햇병아리 기자 시절 제3자 입장에서 봤던 시·도청, 구청과 15년 차 들어 시·도청 및 구청을 출입하며 느끼는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지방직 전체에서 인사의 불신이 너무 크다.
◆“라떼는…”
“흔히 ‘라떼는’이라고 하잖아. 정말 나 어렸을 땐 안 그랬어. 그냥 순차적으로 승진할 때 되면 승진하고 그랬거든. 그러다 육아휴직으로 공석이 생기고 그 공석이 조금 힘든 자리라면 막내 중 그나마 고참 공무원에게 ‘슬슬 승진해야지’라고 압박을 넣는 거야. 정말 가기 싫은데 어떡하나. 선배가 가라고 압박하는데 그냥 가야지. 그땐 그런 분위기였고 실제 힘든 부서 가서 2년 동안 코피 흘려가면서 일하는 거야. 그러다 2년을 어떻게든 버티다 승진할 때 되면 물 안 먹고 승진하는 거지. 승진 예정자가 아니었다면 이때까지의 공로(?)를 인정해서 조금 편한 부서나 아니면 산하기관으로 배치돼. 그렇게 요양을 끝내면 다시 본청으로 들어와서 또 개 같이 구르는 거야. 힘들긴 했어도 그때가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해.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은…”
“그런데 지금은 예전하고 정말 달라. 정말 일이 많은 부서로 가면 우선 기혼 공무원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육휴야. 명분 좋잖아.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고 잘 기르기 위해 휴직하는 것. ‘육휴 가지마’라고 얘기하면 진짜 큰일 나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대응하냐가 문제야. 예를 들어 누군가 진짜 힘든 부서로 배치되자마자 육휴를 낸다고 쳐. 도망가는 거야. 요즘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육휴가 있잖아. 그렇게 해서 도망가는 걸 ‘육휴런(Run)’이라고 해. 그러면 누군가 빈자리를 메워야 하잖아. 쉽게 못 도망가게 미혼인 공무원을 넣는 거야. 미혼인 친구는 그냥 버텨야 하지. 여기까진 옛날이랑 똑같은데 이 다음부터 달라지는 거야. 만약 2년을 버티잖아. 다음 루트는 뭐인지 알아? 요양, 아니면 승진? 둘 다 아냐. ‘이놈 좀 버티는데’ 하면서 이제 또 2년을 힘든 곳으로 보내는 거야. 육휴런으로 공백이 생기는 자리는 매번 있으니까. 승진시키면 될 거 같지? 아니야 요즘 승진 기준은 정권 바뀔 때마다 같이 바뀌는 거야. 일관성이 없어. 내가 순번 앞순위여도 후순위한테 제쳐지는 게 지금의 인사야. 들어봤지? 관운이라고. 운칠기삼(運七技三)을 넘어 ‘운팔기이’ 정도라고 해야 하나. 관운은 타고나는 거야. 아무튼 일은 열심히 했는데 승진도 안 돼, 요양도 못가. 이걸 한두 사이클만 돌려지면 젊은 공무원은 이제 어떻게 되냐. 그냥 질병휴가를 내. 지쳤거든. 정신이 지친 거야. 아무튼 질휴를 낸 친구가 복귀하면 사내 분위기는 어떨 거 같아. ‘고생했는데 잘해주자’를 기대하면 아직도 아마추어야. ‘문제 있는 녀석이네. 우리 부서 받지 말아야겠다’야. 그러면 그 친구 승진은 글렀다고 보면 돼. 상급 기관에서 질휴를 받아 줄 것 같아? 일대일 교류도 안 받아 줘.”
◆“그러면…”
“한동안 젊은 공무원 엑소더스 기사 봤지. 비슷한 거야. 사기업은 고생 좀 한 직원 있으면 어떻게든 보상하잖아. 급여에 인센티브를 조금 더 붙여주든가. 그런데 공무원이 금전적인 인센티브 받았단 얘기 들어본 적 없지. 그렇다고 인사에 이익이 있나. 그것도 아니야. 그냥 일 힘든 부서에 발령받으면 기혼자는 육휴런, 미혼자는 질휴야. 육휴는 그래도 복귀하면 좀 괜찮은데 질휴는 인사고과 다 박살 나니까 어떻게 되냐. 그냥 일 안하고 백기 드는 거야. 공무원이니까 크게 사고 안 치면 잘리지 않고 급여는 꼬박꼬박 나오잖아. 진짜 인사가 만사라잖아. 인사 자체가 박살이 났는데 젊은 공무원이 여기서 어떻게 버티냐. 사람이란 게 미래 지향적으로 설계됐거든. 예를 하나 들어볼게. 금요일 오후 5시가 기분 좋아, 아니면 일요일 오후 5시가 기분 좋아? 백이면 백 다 금요일 오후 5시가 좋다고 하지. 일요일 오후 5시는 비록 쉬고 있는 상태겠지만 다음날 출근할 생각에 짜증 나거든. 그런데 금요일 오후 5시엔 ‘내일하고 모레 쉰다’라는 희망을 품으니까 좋은 거야. 여기도 똑같아. 희망을 안 보여주니 젊은 공무원이 버티나. 거기다 인사고과까지 박살이 나버린 공무원은 일하겠냐?”
◆“유럽 봐라”
“정부가 열심히 일한 공무원 포상 준다잖아. 좋지. 열심히 일한 공무원에게 인센티브 주는 거. 3000만 원이면 꽤 크지. 그런데 일 잘하는 공무원 어떻게 가릴 건데. 또 도돌이표야. 젊은 직원에겐 포상 기회? 안 오지. 그리고 국가직도 아닌 지방직에서 젊고 고생한 직원 추천하진 않지. 그 직원이 있는 국·과의 장이 받는 거야. 이제까지 정부가 공무원을 위해 이것저것 안 해봤겠냐. 다 해봤고 별 효과가 없어서 이번에도 큰 기대는 안 하지. 그냥 공무원의 인사 시스템이 무너진 게 원인이야. 요즘 그 생각은 가끔 든다. 유럽 가보면 행정 시스템이 정말 느리다고 하잖아. ‘아… 우리도 얼마 안 남았구나.’ 솔직히 젊은 직원 열심히 일해도 승진할까말까고 승진에서 물먹었으면 조금 편한 부서라도 보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그렇게 몇 년 흐르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냐. 유럽처럼 등본 하나 떼는데 1주일씩 걸릴 수도 있어. 지금이야 ‘국가와 시민을 위해 봉사한다’라는 게 통하고 별별 민원인이 뭐라고 하니까 지금 시스템이 버티는 거야. 몇 년 뒤에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봐라. 그래서 이거 답 있냐고? 아까 얘기했지. 인사가 만사라고. 인사만 공정해도 이 정도까지 지방직 공무원 사회는 박살 나지 않았을 걸.”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이 글은 여러 지방직 공무원의 구술을 수집해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