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봄과 중가을까지 우리 농촌과 시골마을을 뒤덮을 만큼 많던 제비들이 우리 땅에서 거의 사라진 지는 참 오래 되었다. 새봄을 알려주던 지지배배 노랫소리 반가운 소식과 전깃줄과 초가지붕을 뒤덮고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는 작별을 고하던 제비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흥부가 부러진 제비다리 고쳐주고 박씨 하나를 얻어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는 ‘흥부와 놀부’ 이야기는 박물관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어린 소녀들이 고무줄놀이 하면서 부르던 노래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 가세” 하면서 즐거움이 그냥 그리움으로 남게 된 지도 참으로 오래 되었다. 모든 들판과 논밭에 무차별 뿌려대던 농약과 제초제들 때문에 제비들이 먹을 벌레들이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철따라 왔다가 철따라 떠나는 이 제비의 삶은 우리 문명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기러기들도 같은 운명이겠지.

그런 위대한 삶을 우리사회에서는 지조 없이 제 이득만을 위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못된 인간을 비판하는 말로 ‘철새’같은 존재라고 하기도 했다. 특히 권력을 따라 이리저리 정당과 정치이념을 바꾸면서 영달을 누리고자 하는 그 사람같지 않은 군상을 비판하는 그 말 때문에 이 거룩한 철새들을 모독한 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철새들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모른다. 제비는 ‘강남’을 오고가고, 기러기는 북녘을 오고간다는 것밖에 몰랐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철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큰뒷부리도요다.(이 글은 주간지 시사IN 2025년 11월 11일 치 947호에 실린 정희정 님의 글 ‘13000㎞의 사랑, 새만금 갯벌의 기적’에서 감동을 받아 쓴 것이다.)

큰뒷부리도요는 주로 뉴질랜드와 한반도의 서해안과 알래스카를 오고가면서 산다. 이 새를 뉴질랜드 원주민 황이누이 마오리족은 ‘조상’으로 삼는단다. 그런데 이 새가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2015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곧 멸종위기에 처할 ‘준위협종’으로 지정됐단다. 이에 맞추어 우리 정부에서도 2022년에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큰뒷부리도요의 이동경로를 연구한 사람들과 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3월 하순 뉴질랜드를 떠나 한반도의 순천만, 새만금, 서천갯벌에 들러 한 달 반 정도 힘을 비축하여 멀리 알래스카로 날아간다. 5월 하순경에 그곳에 도착하여 알 까고 새끼 친 뒤에 추운 겨울이 오면 다시 뉴질랜드로 날아간다. 대륙과 대양을 넘나드는 거대한 여정을 한 삶으로 산다.

그런데 뒷부리도요의 여정을 들으면 굉장한 뻥으로만 듣고 생각하지만 무한의 해방과 상상력을 주던 장자의 붕새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장자』의 첫머리 ‘소요유’에 어마어마하게 큰 새 ‘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붕새의 등은 몇 천리가 될 만큼 넓고 크다. 맘을 먹고 날면 그 날개가 마치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는다. 끝없이 아득한 북쪽 바다에서 까마득히 먼 남쪽 바다로 옮겨가려고 할 때, 힘을 다해 물을 차고 하늘로 오른다. 큰 날개로 바닷물을 3000리나 치고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9만 리나 높게 하늘을 오른다. 그런 다음 6개월을 남쪽으로 날아가 큰 숨을 내쉬고 쉰단다. 이글을 처음 듣거나 읽을 때 이런 뻥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 이야기가 얼마나 신선하고 자유로웠던지 모른다. 옹졸한 내 시야와 생각의 폭을 뻥뚫어주어 참 시원했다. 그런데 큰뒷부리도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안타깝고 아프다. 저렇게 곤고한 삶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큰뒷부리도요는 뉴질랜드에서 출발하여 새만금 수라갯벌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날아온다. 무수히 많고 강력한 비바람을 뚫고 날아온다. 그곳에 도착할 때는 몸이 홀쪽하고 힘이 다 떨어져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 물론 상당히 많은 새들은 중간에 바다에 떨어져 죽기도 한다. 몸길이는 약 41㎝에 날개를 펴면 약 70~80㎝ 정도 된단다. 까마귀보다 작은 새다. 그곳 수라갯벌에서 한 달 반 정도 먹고 알래스카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알 까고 새끼 친 다음 다시 뉴질랜드로 날아간다. 이때는 중간에 쉴 곳을 찾기도 하지만 한 번에 가는 새들도 있단다. 이들은 대개 일주일이나 12일 동안 쉬지 않고 날아간다. 이제까지 조사한 것을 보면 한 번 출발하여 1만 3560㎞를 나는 것도 있단다. 이들은 뉴질랜드-새만금-알래스카-뉴질랜드를 한 해에 평균 2만 9000㎞를 오가면서 날게 된단다. 어마어마하게 위대한 새다. 이 새가 인간의 문명과정에 의하여 멸종위기에 처하였단다.

수라갯벌을 메워 군산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지방정부의 노력과 많은 정치가들과 행정가들에 의하여 갯벌이 사라진다면 이 도요새들의 중간 기착지는 없어진다. 그곳에 먹이가 있는 줄 알고 왔던 그들은 다 굶어서 몰살된다. 몇 십리를 걷기도 힘들어하는 인간의 문명과정에 의하여 이 거대한 대륙과 바다를 넘는 새들이 멸종되게 된다고 생각할 때 참 서럽다. 다행히, 당분간은 수라갯벌을 메워 신공항 건설을 하겠다는 노력이 대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중단되었지만, 무수히 많고 끝없이 나오는 개발론자들에 의하여 언제 또 다시 무수히 많은 갯벌들이 사라질는지 모른다. 10개의 공항을 새로 건설하거나 확장한다는 계획이 있는데, 지금 있는 공항들도 사용자들이 많지 않아 적자 운영되는 곳이 훨씬 더 많다. 작은 땅에 그런 무리한 일은 더 이상 생각지도 않고 추진하지도 않았으면 참 좋겠다. 개발에 의하여 철새들이 먹고 살 곳이 사라진다면, 그 땅에서 사는 인간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