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목사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하는 노숙인 분야 인권강사 양성과정에 참여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노숙인 분야 인권강사 양성과정을 개설하게 된 것은 지난해부터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다. 노숙인 시설에 근무하는 종사자는 의무적으로 1년에 4시간 이상씩 인권교육을 받아야 하고, 신규 종사자인 경우는 16시간의 인권 감수성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노숙인 지원법이 갑자기 시행되다보니 노숙인 분야 인권강사 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급하게 노숙인 분야 인권강사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의 시행규칙 제23조(인권교육의 실시)에 보면 ①법 제20조 제 1항에 따른 노숙인 시설의 종사자에 대한 교육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 3조에 따른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다. ②제1항에 따른 교육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노숙인 등에 대한 인권보호 방안, 2.노숙인 등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 구제 및 예방에 관한 사항, 3.노숙인 시설 종사자의 인권 감수성 향상에 필요한 사항, 4.그 밖에 노숙인 등에 대한 인권침해 예방에 필요한 사항. ③제1항에 따른 교육시간은 매년 4시간 이상으로 한다. ④노숙인 시설의 장은 종사자들이 제1항에 따른 교육에 참여하도록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⑤제1항에 따른 교육의 실시 시기 및 방법 등 세부 사항은 보건복지부장관과 국가인권위원회가 협의해 정한다고 돼있다. 그러므로 노숙인 시설에 종사하는 모든 종사자들은 의무적으로 인권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노숙인에 대해 잘 알고 인권에 대해서도 잘 아는 강사진을 양성해 보다 실질적인 인권교육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숙인 시설 종사자들은 침해의 유발자들이란 말인가? 어느 조사에 의하면 가장 우선적인 인권보호대상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사회복지사들은 외국인 노동자(29.0%), 장애인(28.1%), 노숙인(23.3%) 순으로 꼽았고, 일반국민들의 생각은 장애인(42.3%), 외국인 노동자(24.9%), 노숙인(22.9%)의 순으로 우선적 인권보호 대상자 집단으로 선택했는데 우선순위 순서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노숙인이 인권을 보호 받아야할 취약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노숙인 시설 종사자들은 노숙인의 인권을 옹호하고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칫 노숙인들에게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의 유발자 위치에 서 있을 수도 있기에 노숙인 시설 종사자들의 노숙인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인권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교육을 받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나는 인권옹호론자이고, 인권신장을 위해 누구보다도 애써 왔다고 생각했다. 거꾸로 인권교육을 받아야 하는 곳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국가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사회에서 인권침해가 가장 많았던 곳은 군사독재시절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옥에 가두는 등 죄 없는 국민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억압했던 국가기관이었다. 또한 소위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의 노동권, 생존권 등을 억압한 것도 국가였다. 지금도 여전히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는 집단은 국가권력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국가가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권교육을 받으면서 나도 충분히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권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권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인권에 대한 생각이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현대의 인권에 대한 정의는 세계인권선언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정의한다. 즉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존엄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 존엄한 가치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침해 받을 수 없다는 것이며, 인간은 인간다움의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과 벧엘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벧엘의 집 실천 활동 자체가 노숙인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인권을 옹호하고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벧엘의집의 활동은 노숙인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이거나 인권옹호를 위한 활동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벧엘도 노숙인들에게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충분히 그들을 억압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없으면 인권을 옹호한다는 미명하에 충분히 인권을 억압할 수도 있다. 인권억압은 제도나 큰 권력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아주 작은 권력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벧엘은 노숙인들에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는 무엇보다 그들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계획해야 한다.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생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다. 무슨 거창한 인권을 말하기 전에 아주 사소한 인권에 대한 감수성으로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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