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들었다 놓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주류문화 풍자 코미디 'SNL코리아' 등
마이너들에 대한 동질감·카타르시스 유발
외면 받아온 B급 코드, 대중문화 새지평
“전 태생이 ‘B급’입니다. 솔직히 저는 B급을 좋아합니다. B급문화를 만들 때 소스라치게 좋습니다.”
지난해 지구촌을 들었다 놓은 가수 싸이가 미국공연을 마치고 오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B급 문화’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전 세계 15억 인구가 봤고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공개 9일 만에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조회수 2억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B급 정서를 노골적으로 칭송하는 팀 버튼 감독의 전시회는 전시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서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46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철저하게 주류문화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B급방송 ‘SNL코리아’는 케이블채널 예능프로그램의 간판으로 자리 잡으며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못지않은 화제를 낳고 있다.
B급문화가 메이저문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B급문화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전만 해도 국내에서 B급문화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주류인 B급문화가 떠오르려면 이를 생산하고 받아들일 계층이 필요한데 1970년대까지 이런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B급문화는 ‘저속하고 천박한 이들이나 접하는 문화’라는 인식이 아직까지 기성세대의 뇌리에 박혀있다.
다만 영화계에서는 B급문화의 단초가 엿보였다.
엄밀히 따지면 B급문화로 분류되기는 힘들지만 ‘월하의 공동묘지’와 ‘여곡성’ 등은 당시 비주류 장르였던 공포영화라는 점과 처녀귀신이라는 희박한 소재로 인해 비주류 영화로 분류됐다.
현재는 한국 공포영화의 시초라는 평을 받는 영화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영화평론가들에게는 좋지 못한 평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B급문화, A급문화와 어깨를 견주다
국내에서 B급 문화를 본격적으로 누린 1세대는 19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 1980년대 중후반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른바 ‘X세대’이다. 이들은 전두환 정권의 교복·두발 자율화 방침 덕에 청소년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보냈고 1990년대 서태지를 앞세운 신세대 음악이 쏟아져 나올 때 대학 시절을 보냈다. 2000년대 기성세대로 성장해 B급 문화의 창작자가 되거나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가 됐다.
B급믄화의 확산은 가요계로부터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이후 곡들은 사회비판적 가사와 파격적인 멜로디 등을 담았다. 당시 음악평론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B급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대중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열광하다시피 하면서 언론들도 B급문화에 대해 하나둘 언급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에도 시나위와 들국화와 같은 저항적인 음악의 가수는 있었지만 이들은 가요계에서 비주류에 머물렀다. 서태지 음악이 주류 가요계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대중문화의 성숙도가 높아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딴지일보도 B급 문화의 첨병으로 꼽힌다. 언론 형식을 차용하는 신선함과 해학이 담긴 풍자로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이후 B급문화가 하나의 주류 문화로 올라섰다는 데 의미가 크다. X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서 B급문화를 향유하는 인구가 확대됐고, B급 문화가 상업화되면서 대중들은 그 재미를 발견하게 됐다.

가요계에서는 ‘언니네 이발관’과 ‘황신혜밴드’를 비롯해 ‘내 귀에 도청장치’, ‘노라조’ 등 이름과 곡명에 B급어법을 사용한 밴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영화계에서는 B급 소재를 다룬 ‘복수는 나의 것’ 등이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B급문화의 저력을 보여줬다.
B급문화에 정점을 찍은 것은 바로 MBC의 ‘무한도전’이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자청하는 6명의 연예인들로 시작된 무한도전은 현재 ‘시청자가 뽑은 프로그램’ 상을 차지하고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 출발은 역시 B급문화였다.
같은 방송국의 ‘라디오스타’도 2인자를 자처하는, B급문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방송이다.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B급으로 시작해 지금도 B급방송을 추구하고 있고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케이블채널로 인해 B급문화는 일반적으로 활용되면서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이 생긴 것이다.
◆B급문화, 저성장 시대 플랜B 전략과 맞닿아
B급은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기업들도 마케팅 전략을 B급으로 설정하면서 제품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 퍼져있는 경기불황으로 인해 기업들이 선택한 전략은 A급이 아닌 B급인 것이다.
최근 중국에선 ZTE나 화웨이, TCL 등 휴대전화업체들이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와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에 대항키 위해 중저가 스마트폰을 내세워 시장점유율을 늘려가는 중이다. 공룡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중저가 화장품 에뛰드 브랜드를 론칭한 것도 B급문화인 칩 시크 전략을 기업들이 실제로 구사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국내기업들도 B급문화를 이용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황기에 기업들은 비용을 아끼고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촌스러운 B급 광고나 마케팅을 시도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숙취해소 음료인 ‘여명808’이나 ‘남자 몸에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말로 유명해진 천호식품은 B급문화를 통해 성공한 제품으로 꼽히고 있다.
저성장 시대의 소비 수요 확대를 위한 B급 문화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 B급 문화, 출발은 1930년대 할리우드 B급문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A급문화로 일컬어지는 주류 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계 음악시장을 뒤흔들었지만 스스로 삼류라 자칭하는 싸이를 비롯해 영화와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서 B급문화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그렇다면 B급문화라는 단어는 어디서 나왔을까. B급문화는 사회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규명된 정의는 없지만 B급이라는 단어는 계속해서 사용됐고 정확한 어원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B급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것들의 공통점은 대개 문화 등의 콘텐츠이다. 때문에 B급의 어원이 영화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1930년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가공할 만한 제작비로 만든 작품에 끼워 팔기 식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B급이라는 단어의 시초가 되는 셈이다. 영화는 촬영 일수에 따라 배우와 스태프들의 임금이 지급됐기 때문에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빠른 촬영이 필수였다. 때문에 스토리 등 작화보다는 영화의 완성이 더 큰 목적이어서 수 많은 영화감독들은 B급영화 촬영에 사활을 걸었다. 이 당시에 주를 이룬 B급 영화는 대부분 SF와 호러 등으로 B급 영화는 이 시기가 전성기라 할 정도로 차고 넘쳤다. 그렇다고 B급영화가 대중에게 외면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당시 영화제작사였던 RKO사가 만든 ‘캣 피플(Cat people)’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B급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모든 분야에 B급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의 미국은 대공황으로 인해 영화 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경제가 불황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저렴하게 즐길 거리를 찾는 것이 대중들의 심리였기 때문이다. B급영화로 시작된 B급문화는 이제 대중문화를 지탱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로 자리 잡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