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목사

조카인 강 줄리엣 마리아 수녀가 수도자의 길을 가겠다며 수녀원에 입문한지 약 3년이 지나 첫 서원미사를 드린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인천에 있는 노틀담수녀원에 다녀왔다. 개신교 성직자가 시국기도회와 같은 공통의 접점이 전혀 없는 순수 가톨릭교회의 서원미사와 같은 예배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기독교와 가톨릭교회가 같은 성경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한편에서는 반목하고 질시해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신구교가 함께 성경을 번역하기도 하고, 공동예배문을 만들기도 하고, 피정과 같은 영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개신교회나 가톨릭 사제들은 아직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회에서는 가톨릭을 이단종파로 취급하기도 하고 반대로 일부 가톨릭교회에서는 개신교 목사들을 성직자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미사를 드리는 동안 개신교 목사인 나는 어색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수녀로 살겠다는 고백이나 목사가 되겠다는 고백은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세상의 가치관이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즉 구도자의 삶을 살겠다는 고백인 것이다. 그렇기에 구도자의 길은 기존 삶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막 구도자의 길에 들어선 강 줄리엣 마리아 수녀를 보면서, 25년 전 목사안수를 앞두고 그 길을 가야하나 여기서 멈춰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목사로 살기에는 너무나 흠결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목사안수를 앞두고 주저주저했던 것이다. 그 때 나 보다 1년 앞서 목사안수를 받은 선배 목사님이(현재 대전 빈들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남재영 목사님이시다) 자신이 목사안수를 받으면서 고백했던 ‘하나님의 노비문서에 이름을 올리면서’라는 글을 통해 용기를 얻어 결단하고 목사가 됐던 것이다.

“…목사가 되는 것은 종의 멍에를 지는 겁니다. 자신이 누리는 자유를 스스로 버리고 영원히 종이 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출애굽을 해 나온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세의 법전이나 신명기 법전에는 히브리 사회에서 그 누구든지 종살이는 6년이면 정년이었다. 6년이 지나고 돌아오는 7년째 되는 해에는 종의 신분에서 풀어 자유하게 하고 해방시켜 줘야 하는 것이 그 사회의 법이자 하나님의 법이었다. 그런데 6년의 종살이에서 자유하게 된 종이 스스로 얻은 자유를 포기하고 다시 그 주인에게 종이 되겠다고 하면 주인은 그 사실을 재판장에게 확인 시키고 난 다음 다시 종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 그 종은 다시는 자유 할 수 없는 영원한 종이 돼야 했다. 이 영원한 종이 됐다는 표시로 주인집 문이나 문설주에 귀를 갖다 대고 송곳으로 귓불을 뚫습니다. 그리고 그 귀에 귀걸이를 걸어서 종신노예가 됐음을 표시 하게 된다. 귓볼을 뚫는 의식은 영원한 종이 되는 의식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 의식을 치른 후 그때 사용한 송곳을 주인집 문이나 문설주에 꽂아 놓음으로써, 그 종이 죽을 때까지 그 집의 종임을 가시적으로 입증했다. 목사도 죽을 때까지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목사안수의례는, 평생을 두고 당신을 위해 종으로 살겠다는 하나님 앞에서 서약이자, 하나님이 그 다짐 받아두는 의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목사안수란, 죽을 때까지 자유 없는 종이 됐다는 표시로, 주인집 문이나 문설주에 다 귀를 뚫어 귀걸이를 다는 모세의 법전에 명시된 그 의식이나 진배없다. 이렇게 보면 목사란, 죽을 때까지 돌아설 수 없는 종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히브리의 종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종인 목사나 수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통째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도의 길을 자처한 목사나 수녀의 운명인 것이다. 그러면 주인인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성경은 생명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여 참 생명이 넘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굳은 결단을 하고 다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살다보면 유혹에 흔들릴 때도 있게 마련이다. 강 줄리엣 마리아 수녀님,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구도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하지만 혹시 구도의 길을 가다 지치거나 힘들어지면 시편의 말씀인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의지하고 끝까지 구도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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