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균
사단법인 모두사랑 대표
태양력 문화권의 서양 사람은 추수감사절을 뜻있게 보낸다. 태음력을 사용하는 동양인도 추석을 민족적 명절로 지내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상반된 점은 서양인은 태양을, 동양인은 달을 중심으로 명절을 지낸다는 것이다.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상을 그린 성화(聖畵)를 보면 그 뒷면에 달이 그려져 있다. 달은 ‘최후의 심판’ 등 종말을 상징하고 있어 서양인에게는 태양과 달리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달에 대해 서정적이지 못한 서양인의 생활 속에 달은 별 의미 없이 여겨지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동양의 8월 보름달 시기를 대체로 무덥고 지루한 여름밤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서양 사람에게는 추석이 별 볼 일 없다.

그러나 태음력을 쓰는 문화권은 다르다. 중국에서는 중추월석(仲秋月夕)이라 하여 월병으로 달에 제사하고 친지끼리 그 달떡을 나눠 먹는 관습이 있다. 이렇게 발달한 중국의 월병은 세계적인 먹을거리가 됐다. 중국 사람은 중추날 수박을 먹는데 이때 수박씨앗마저 모조리 까먹고 꼭 한 톨만 남기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 풍습은 ‘몽고 민족의 마지막 한 사람만 남기고 모조리 멸망하도록 저주하는 날’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날 밤 억새나 갈대풀을 꺾어 놓고 달마중을 한다고 한다.

우리 명절 가운데 칠석(七夕), 제석(除夕·섣달 그믐날 밤), 등석(燈夕·사월초파일) 등 ‘석(夕)’자가 들어가는 명절은 모두 밤에 행사가 이루어진다. 이에 비해 추석은 밤보다 낮에 명절 행사가 진행된다. 추석만은 같은 ‘석’자 항렬인 데도 다르다.

한글학자 육당 최남선은 이 ‘추석’이란 말의 어원을 중국의 ‘중추월석’에서 따온 것이라고 고증했다. 19세기 초엽인 순조연간에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부터 불러온 ‘가위’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기록된 데로 ‘더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고 하여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고 즐겁게 지낸다. 추수한 햅쌀로 빚어낸 송편과 햇과일을 먹으면서 서로 회포를 풀며 기뻐하고 즐겁게 놀이하는 날이다. 씨름과 소싸움, 줄다리기와 강강술래, 달맞이 등 여러 행사들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19세기 조선 순조 후반에 씌어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비로소 추석이란 말이 나온다. 음력 8월 15일을 ‘추석'이라고도 함이 고전 문학에서도 보이는데 고려 때 가요인 ‘동동(動動)’에서는 ‘8月 보로 아으 가배(嘉俳) 나리마 니믈 뫼셔녀곤 오 날 嘉俳샷다 아으 動動다리’라 하였고, 조선시대 가사인 ‘사친가(思親歌)’에는 ‘8月 추석 일에 백곡이 풍등하니 낙엽이 추성(秋聲)이라 무정한 절서(節序)들은 해마다 돌이 오네. 여기저기 곳곳마다 슬프도다. 우리 부모 추석인 줄 모르시나. 벌초향화(伐草香花)하는구나’라고 되어 있다. 결국 ‘추석’이란 말은 ‘가위'’란 말보다 훨씬 후대에 와서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추석이 되면 귀성길로 민족대이동이 이루어진다. 속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고 하듯이 추석을 전후하여 저마다 고향을 향하여 일가친척을 만나기 위해 1000만 명 이상이 짧은 기간 대이동을 하게 된다. 아시아에 일본·중국·한국의 3국 가운데 우리 민족만이 이날을 민족적 대명절로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추석이란 말은 대체로 우리 고유한 명칭인 ‘한가위’라는 말로 역사적 고증이 되고 있음에도 한말(韓末)의 지식층이 만들어낸 사대주의적 명칭을 고쳤으면 한다. 경사스러운 날 즐겁게 논다는 뜻인 ‘한가위’란 전통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순우리말을, 전통적 우리말로 사용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의 교과서 내용은 어떤지 먼저 살펴보고 방송, 신문·잡지, 인터넷, 그리고 신문 사이에 끼워 넣는 광고지 문안 하나까지도 전통적인 우리말 ‘한가위’를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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