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목사

벧엘의집 사역을 시작한지도 15년이 흘렀다. 처음 대전역에서 노숙체험을 시작으로 사역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한 10년 정도 열심히 하면 노숙인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10년 하고도 절반이 흘렀지만 그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은 하지마라’, ‘그래도 희망을 갖고 한 번 해보자’는 말이다. 지금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그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15년 전, 30대의 패기 넘치는 젊은 나이에 달랑 벧엘의집 계획안 하나만을 가지고 노숙체험을 위해 대전역으로 향할 때만 하더라도 계획안대로 최선을 다 하기만 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감이 넘치던 그 때는 노숙인 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완전 초짜였다.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들의 삶의 자리로 내려가 직접 경험하고 함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무작정 대전역으로 향했었다. 처음부터 아무 대책 없이 무턱대고 출발해서 그랬는지 벧엘사역 초기에는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고, 이대로만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숙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가 벧엘사역을 시작하면서 꿈꿨던 것은 노숙인들에게 그저 밥이나 주고, 잠자리나 제공하고, 여전히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도의 노숙인 복지기관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부의 사회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벧엘사역이 여느 노숙인 복지기관과 비슷하게 노숙인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NGO단체처럼 정부의 사회정책에 대해 비판과 감시기능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비록 지금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아 거리에서 생활해야 하는 밑바닥 인생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적자생존이라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체제를 넘어 서로가 힘이 돼주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관명칭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이라고 지었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자는 의미에서 희망진료센터라고 했으며, 혼자 열 걸음이 아닌 열이 한 걸음씩 가는 더불어 살아가는 생산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며 야베스공동체라고 짓기도 했다.

이렇듯 내가 벧엘을 통해 꿈꿨던 희망은 2000년 전 팍스로마라라는 거대한 사회체제와는 다르게 갈릴리 시골구석에서 새로운 체제인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던 청년 예수의 가르침을 실현하려 했던 초대교회 공동체를 21세기에 새롭게 해석하고 실험해보자는 것이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마태복음 기자가 증언하는 것처럼 어느 포도원 주인이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한 일꾼들에게,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나, 점심때부터 일한 사람이나, 저녁때부터 일한 사람에게 얼마만큼 일을 했느냐를 따지지 않고 똑같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인 한 데나리온을 임금으로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가지고는 그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예수의 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체적인 삶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초대 교회의 고백을 2000년이 지난 지금 돈이 모든 선의 기준이 돼버린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으로부터 철저하게 밀려난 사람들인 노숙인과 쪽방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기만 하면 뭔가 될 것처럼 보였다. 울안공동체를 통해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함께 살아가는 생활공동체를 실현해 보려고 했고, 쪽방상담소를 통해 더불어 소통하고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실현해 보려고 했다. 또 야베스공동체를 통해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생산 공동체를 만들어 실현해 보려고 했다. 하나하나 꿈을 실현할 기관들이 만들어지면서 잘만 하면 호랑이는 못 그려도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꿈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나를 포함한 사람이었다. 나 자신도 머리로는 이상을 꿈꾸고, 입으로는 이상을 말하지만, 몸은 이상을 향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에 물들어 그것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울안공동체 식구들도, 쪽방지역 식구들도, 야베스공동체 식구들도 자신의 이익만을 원했지 함께 나누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인색했다.

이제는 15년 전에 꾸던 꿈이 단지 젊은 날의 허세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벧엘의 꿈은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일까? 분명 그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고백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닌 것 같지만 조금씩 변하면서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벧엘이 가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어쩌다 비틀거려도 넘어지지 않도록 주님께서 잡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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