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 무능한 하후무(2)
하후무는 호화찬란한 의장을 뽐내며 허장성세로 나오자 자룡은 백전노장답게 일부러 위엄을 과시하며 백수를 휘날리며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하후무를 취하려고 문기 앞을 향하여 달려 나갔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자룡의 말이 날개가 돋친 듯 날뛰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하후무는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말을 놓아 자룡에게 달려가려 하였다. 이 모양을 본 한덕이 급하게 만류하며 말하기를
“장군은 잠간 기다려 주시오. 내가 내 자식의 원수를 갚아야 하겠소.”
말을 마치자마자 말을 달려 개산대부를 춤추며 자룡을 취하려 달려들었다. 말과 말이 부딪치고 사람과 사람이 발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교봉 수합에 자룡의 서릿발 같은 칼이 햇빛을 받아 섬광을 내며 한덕의 엄심갑을 푹 찔러버렸다.
“아악!”
산천을 쪼갤 것 같은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한덕은 이렇게 말 아래 떨어졌다. 하후무가 간담이 서늘하게 깜짝 놀라 급히 본진으로 달아났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등지가 진군명령을 내려 위군을 시살하니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위병은 이번에도 크게 패하여 패잔병을 이끌고 3십 리 밖으로 쫓겨 가서야 겨우 진을 칠 수 있었다. 하지만 하후무는 손발이 떨리고 질식할 지경이어서 늦은 밤에야 장수들을 불러 모아 의논하기를
“나는 조자룡을 말로만 듣고 실물은 보지 못했더니 참으로 두려운 영웅이었소. 당양 장판교에서 아두를 구했단 말이 이제야 진실인줄 알겠소. 이 사람이 비록 늙었으나 대적할 장수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참군 정무가 말하였다. 그는 조조의 모사 정욱의 아들이다.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자룡은 용맹은 있어도 꾀는 한 수 떨어진 장수입니다. 내일 도독께서 군사를 이끌고 나가되 좌우편에 복병을 두고 가십시오. 그래서 자룡을 유인하여 복병의 포위망 안에 넣고 도독께서는 거짓 패하여 산으로 올라가 복병을 지휘하십시오. 자룡을 첩첩이 둘러싸서 잡게 한다면 제아무리 자룡이라도 잡히고 말 것입니다.”
하후무는 정무의 계교를 쓰기로 하고 동희에게 3만 군을 주어 좌편에 매복시키고 설측에게도 3만 군을 주어 우측에 매복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대군을 거느리고 촉진을 향하여 싸우러 나갔다. 자룡이 하후무가 나타나자 다시 싸우러 나가매 등지가 이를 가로 막으며 말하기를
“어제 대패한 적이 신속하게 다시 공격하는 것은 반드시 숨은 계교가 있을 것입니다. 노장군께서는 적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너무 염려 마오. 저것들이 계교를 쓰면 얼마나 쓰겠소. 뻔히 보이는 것은 매복 작전이겠지요. 내가 여지없이 깨뜨려 보이겠소.”
자룡이 말을 달려 나가자 위장 번주가 마주나와 싸웠다. 그러나 3합을 채우지 못하고 급히 달아났다. 자룡이 이를 쫓았다. 그러자 위국 진중에서 여덟 장수가 함께 나와 덤벼들었다. 이를 자룡이 맞아 싸우자 등지가 자룡이 염려되어 뛰쳐나갔다. 헌데 엎치락뒤치락 그럭저럭 싸우다 보니 적진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거대한 숲이 벌려져 있는 가운데로 아무런 소득 없이 말려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좌우 숲에서 복병이 크게 일어났다. 산천을 쪼갤 것 같은 함성과 포성이 동시에 터지며 위군이 달려든 것이다. 순식간에 자룡과 등지는 하후무의 6만대군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겹겹이 에워 싼 위군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룡을 돕겠다던 등지도 어렵게 되었다. 자룡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치고 죽이고 자르고 베고 별의별 기교를 다부려 최상승의 무예를 선보였으나, 죽이고 또 죽여도 달려드는 위군의 소용돌이를 뚫고나갈 방도가 서지 않았다.
자룡이 한 동안 싸우다 깨닫고 보니 하후무가 산위에서 자룡의 가는 길을 세세히 알려 주고 있었다.
“하후무 저 놈이...”
자룡은 하후무를 바라보고 산위를 향하여 말을 놓았다.
“자룡을 죽여라! 활을 쏘아라!”
산위를 향하여 오르는 자룡에게 집중적으로 화살을 퍼 부었다. 산위에서 바위와 돌이 폭포수처럼 굴러 내려왔다. 자룡은 임기응변으로 숲속에 몸을 의지하고 한숨을 돌렸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싸우다 보니 몸은 솜처럼 부풀고 온 몸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따르는 병사도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위국 병사들은 줄기차게 자룡을 찾아 쫓아와서 외치기를
“자룡은 항복하라! 이제 더 숨을 곳이 없다. 어서 나와 항복하라!”
산천을 뒤 흔드는 소리를 들으며 자룡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마지막 죽을 자리를 찾으려고 했다. 대낮처럼 밝은 보름달이 노장의 마음을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 자룡은 하늘을 우러러 혼자말로 탄식하기를
‘나는 늙었다고 인정하기 싫다. 헌데 이런 후진 곳에서 죽다니...! 이것이 조자룡의 운명일 수 없다.’
자룡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고 탄식을 늘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