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머리칼에서 살구꽃 향내가 났다.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밤을 보냈다.
세월이 흐른 후 그녀는 내게 말했다. 바보! 등신! 쪼다라고!
이 시는 벧엘의집 울안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이 모 씨가 대전복지재단 창립 2주년 기념식 식전행사에서 낭송했던 시다. 전문가의 시각으로는 시라고 하기에는 볼품이 없을지 몰라도 내 눈에는 시인의 삶이 아주 잘 표현된 아름다운 한 편의 시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벧엘의집이 무슨 시인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지난해부터 대전복지재단, 대전시민문화센터와 함께 쪽방주민과 울안공동체 식구들을 대상으로 쪽방 1번지 문화마을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으로 미술교실(내가 사는 우리 마을 그리기), 노래교실, 문학교실(내 삶이 한 줄의 글로 살아나다!) 등의 문화학교를 열고 있다. 그 중에 미술교실과 문학교실은 1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대전복지재단 창립 2주년 행사에 시화전 전시회와 더불어 시 낭송까지 하게 된 것이다. 앞의 시도 그 중의 한 분인 이 씨가 낭송한 시다.
벧엘의집이 문화 프로그램을 시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도개걸윷모라는 중창단을 조직해 보기도 했고, 보석 같은 남자들이라는 사물놀이패를 조직해 마당극을 꾸미고 있기도 하고, 보컬그룹을 조직해 보기도 하는 등 수없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다행히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극단우금치의 지도를 받고 있는 보석 같은 남자들이라는 사물놀이패(연말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마당극을 공연할 예정이다.)와 대전시민문화센터의 강숙영 소장이 지도하고 있는 문학교실뿐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면 시, 소설이 되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미술작품이 되고, 곡조를 붙이면 음악이 되고, 동작으로 표현하면 춤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꼭 영웅의 이야기,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작가들의 것만이 문화는 아닐 것이다. 비록 투박하지만 한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그들 스스로 글로, 그림으로, 동작으로, 곡조로 표현하면 충분한 문화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비록 실패하고, 가난하고, 소외돼 살아가지만 이들의 삶도 문화라는 도구를 통해 새롭게 표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문화는 교양 있고, 지식이 풍부하고,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문화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쪽방주민, 노숙인들도 문화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온 삶에 의미를 담아 글과 그림, 동작으로 표현하도록 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스스로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가도록 한다면 충분히 훌륭한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우라 아야꼬라는 일본의 소설가도 빙점이라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아주 평범한 가정주부였다고 한다. 비록 체계적인 문학수업, 미술수업, 마당극 수업은 받지 않았지만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워가며 자신의 감성을 글로 표현하도록 한다면 그들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
때론 한글을 몰라서, 때론 먹고 사는 것에 너무 바빠서, 세상에 치여,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지금까지 가슴속 깊이 감춰 놓았던 시인의 마음, 소설가의 상상력, 화가의 눈을 찾아주고 싶다.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문화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새롭게 표현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이렇게 된다면 쪽방지역은 문화마을이 되고, 쪽방주민은 모두 시인, 소설가, 화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표현방식으로.....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