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 여섯 번 기산에 출병하다.②

공명은 중원복구라는 대명제 하나를 들고 사는 화신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3년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공명은 그 3년 동안 갖은 정성과 열성을 기울여 촉국의 산업을 진흥시키고, 백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국력이 부쩍 신장되었다. 미풍양속이 서고 국고는 양곡이 철철 넘쳐났다.
‘부국강명이란 이런 것.’
공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산으로 다시 달려가 선주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건흥 13년 봄 2월. 공명은 궁에 들어가 후주을 뵙고 아뢰기를
“신이 군사를 쉬게 한지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양초가 풍족하고 무기는 완비되고 인마는 생기가 넘치니 위를 정벌할 수 있는 실력이 생겼습니다. 신이 이제 전장터로 나가면 중원이 회복되지 않는 한 폐하를 뵙지 않을 각오입니다.”
“상부, 짐이 보기에는 천하는 삼국이 정립하여 안정되어 있소이다. 특히 오와 위가 우리 국경을 침범하지 아니한데 무슨 까닭으로 군사를 자주 일으켜 소란을 자초하십니까? 이제 우리도 안정된 가운데 평화를 즐기는 것이 좋겠소.”

후주는 그저 무사안일(無事安逸)을 추구하는 그런 평화주의자였다. 한실 부흥이라는 목적의식 같은 것은 원래부터 가져본 적이 없는 무능한 후주였다. 그런 후주에게 공명이 대답하기를
“폐하, 신이 선제로부터 지우(知遇)하시는 은혜를 받았으니 어찌 그 은혜를 꿈엔들 잊겠나이까? 폐하를 위하여 중원을 극복하고 한실을 부흥시킬 일이 신의 하나뿐인 생의 목적이고 의무입니다.”
공명이 금강석 같은 의지를 보이자 곁에 있던 태사 초주가 아뢰기를

“승상께서도 아시는 일이겠으나 이번 출사는 성급한 것 같습니다. 근자에 남쪽에서 수만 마리 새가 날아와 한수에서 죽었는데 이는 분명 불길한 일이옵니다. 그런가 하면 신이 천문을 본바 규성이 태백의 분야로 침범해서 그 성기가 북쪽에 있으니, 위를 치는 것은 반드시 불리하다고 생각됩니다.”
“초태사는 들으시오. 내가 선제의 탁고하신 뜻을 받았으니 어찌 그따위 일들로 대사를 저버릴 수 있겠소.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군사를 일으켜 중원 극복에 나설 것이오.”

공명은 태사 초주의 진언을 일언지하에 물리치고 다시 후주에게 아뢰기를
“신의 몸은 비록 거친 전장 터에 나가 있어도 마음은 항상 폐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모시고 있겠나이다.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신이 지근거리에 있지 않을지라도, 항상 성도를 지키고 있음을 믿어 주소서.”
공명은 이렇게 후주를 설득하고 나서 선주의 사당에 제사를 정성껏 드렸다. 그리고 눈물을 뿌리며 목숨을 걸고 유지를 실천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사를 마치고 사당을 나오는데 관흥이 와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지난날 장포를 잃고 얼마나 비통해 했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또 관흥을 보낸 것이다. 공명의 비통한 심사는 어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기산을 향한 여섯 번째 출정’
그 서곡은 관흥이 죽었다는 부음으로 시작되었다. 어둡고 캄캄한 먹구름장이 앞을 가렸다. 이번 출정은 비창한 빛을 띠고 있었다.

34만 대군을 5로로 나누어 진군했다. 선봉장으로 강유와 위연을 삼았다.
이때 위국은 연호를 청룡으로 바꾸었다. 공명이 기산으로 진출한 것은 청용 2년 2월이다. 공명이 기산으로 진출한 소식을 들은 사마의는 곧 궁으로 들어가 위왕 조예에게 아뢰기를
“폐하! 촉국이 또 침범했습니다. 지난 밤 신이 천문을 보니 위국의 왕기가 타는 듯 왕성했나이다. 공명도 이 사실을 이미 알겠지만, 이를 무시하고 군사를 일으킨 것은 스스로 패망을 자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촉병을 맞아 반드시 승리코자 하온데 네 사람을 꼭 데리고 가기를 원하나이다.”

“그래, 도독이 데리고 가고 싶은 장수가 누구요?”
“개국공신 하후연의 네 아들인 패, 위, 혜, 화의 사형제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다 무예에 능통한데다가 촉국에 원한이 큰 자들입니다.”
“사형제가 가진 촉에 대한 원한이란 게 무엇이오.”
“그들의 선친 하후연이 촉국과 싸우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도독의 바람이 그것이라면 데리고 가시오.”

‘하후패의 전선에 등장이 이때이다.’
조예는 사마의에게 자상하게 묻고 즉석에서 사마의의 부탁을 윤허했다. 하후 사형제를 위수전투에 참가시켜도 좋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마의는 하후 사형제를 대동하고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위수를 향하여 출동했다. 그리고 위수 강안에 당도하여 진을 치고 5만군을 위수 강변에 배치하여 9개 부교를 세우고 하후패와 하후위에게 영문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큰 영문 뒤 동쪽 언덕위에 크게 성을 쌓아서 촉병의 불의의 습격을 막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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