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사람들은 거기만 성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꼭 그곳을 고집했어야 했나? 그곳이 대체 어떤 곳이기에 기독교인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순례를 가는가? 그곳이 여행제한 구역이었던 것을 알고 간 것일까, 아니면 모르고 간 것일까? 등 궁금해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기독교인들은 참 극성스럽다, 국내에서도 문제를 많이 일으키더니 외국에까지 가서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등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앞으로는 시내산 성지순례는 갈 수 없겠구나, 참 애석한 일이네, 참 안된 일이네 하면서 약간은 긍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못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성지순례만 놓고 보면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만한 일도 아니다. 또한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 시시콜콜 따질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테러사건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 자체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불교인들이 미얀마를 순례하는 것,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성지인 중동지역을 순례하는 것, 이슬람인들이 자신들의 성지인 모스크를 순례하는 것 모두 고유한 종교행위이다. 하지만 불교의 성지와는 달리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의 성지는 중복되기도 하고 여기에다 민족적인 갈등,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해 성지순례 자체가 갈등요인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다녀오게 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7년 전, 아내가 유방암 수술을 받았을 때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아내에게 퇴원하면 꼭 함께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성지순례를 가자고 약속했던 것을 이번에 다녀온 것이다. 즉 아내가 한 목회자의 아내로 살면서 온갖 어려움을 홀로 견디다 못해 암이라는 병을 얻은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7년 전 기독교인들의 꿈인 성지순례를 약속했고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렇듯 신앙의 발현이든, 종교적 행위이든, 또 다른 이유이든 성지순례 자체는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지순례 지역은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가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는 곳이기에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있기에 이번과 같은 참변이 예전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었던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종교인들은 무엇 때문에 성지를 순례하는 것일까? 나는 왜 성지순례를 가려고 했던 것일까? 아마도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종교의 가르침이 폭력행사를 정당화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성지순례를 하는 기간 내내 나를 답답하게 했던 것이 바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들이었다. 이집트의 무슬림에 의한 기독교인에 대한 차별과 무차별적인 폭력, 이스라엘의 유대인에 의한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경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시대에는 기독교국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전 국민의 80%이상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랍군대가 들어와 이슬람국가가 된 뒤 기독교인들이 소수로 전락하게 되면서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기독교(곱틱교회) 인구가 약 7% 정도인데 대부분 이슬람인들의 폭력을 피해 도시 외곽에서 쓰레기를 주워 모으면서 멸시와 천대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반대로 이스라엘에서는 이슬람인들이 유대인의 분리정책과 차별정책으로 인해 5m가 넘는 콘크리트 분리장벽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 역사는 잠시 뒤로하고 현재 현상만 놓고 본다면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에 의한 아랍인들의 폭력, 이집트에서는 이슬람에 의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으로 성지가 아닌 갈등과 폭력의 땅이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기에 종교는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어쩌면 진정한 성지는 폭력으로 점철된 유적이 아닌 그 속에 깃든 예수의 평화가 아닐까? 콘크리트 분리장벽안의 아랍인 거주 지역인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당 입구에 있는 베들레헴 평화센터를 보는 순간 진정한 성지는 기념교회당이 아닌 예수의 평화가 깃든 바로 그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라기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도, 유대인도,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건넨 첫 인사인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한마디의 인사가 폭력이 난무한 성지에서 다시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한다. 끝으로 참사를 당한 유족들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