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월근
아름다운세상 이사장

대개 우리네 풍습은 음력설이나 팔월의 추석에 웃어른 또는 평소 존경하는 분에게 선물을 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받을 수도 있는데 선물을 주고받을 때 그 물품의 선택에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덴마크 속담에 ‘선물은 여자의 마음을 황홀하게 하고, 또한 법(法)을 유명무실(有名無實)하게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바로 여기에 선물과 뇌물의 경계선이 있는 것도 같고 그게 그것인 듯도 하여 그 해석이 때로는 헷갈리기도 한 것임은 누구나 공감이 갈 것 같다.

그런데 우리네 조상들은 어떻게 그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여 왔는지 잠시 살펴보자.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여름에는 부채를, 겨울에는 다음해의 책력(冊曆)을 보냈는데 책력이란 오늘날의 달력을 지칭한다. 이는 선물이 철에 맞음을 이르는 말이다.

뇌물은 정약용(丁若鏞)이 쓴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천금불사 백금불형(千金不死 百金不刑)’이라는 구절로 표현돼 있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돈 천냥을 주면 죽을 사람도 살고, 돈 백냥을 주면 형벌을 면할 수 있다’라는 것으로 뇌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이상의 글에서 보면 선물과 뇌물의 경계선이 어디인지 알 듯도 하지만 명확한 구분은 사실 어렵다.

조선시대의 한 재상이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에게 말하기를 “우리 집사람이 번번이 뇌물을 받는다는 비방을 듣습니다. 장차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김공(金公)은 “부인의 청탁을 (재상께서) 들어주지 않으면 그 비방은 없을 것입니다”하고 알려주었다. 이에 그 재상이 크게 깨달아 훗날 청백리(淸白吏)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모 국장이 세종시로 이사를 가면서 모 기업으로부터 100만 원 내외의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선물 받았다가 뒤늦게 외부에 알려지자 이를 되돌려 보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 일은 사실 공정거래가 아니었고, 또한 선물도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율곡(李栗谷) 선생은 친구 사이에 재물을 주고받는 일이 있는데 주는 것은 받아야 하겠으나 내가 부족하지 않으면 쌀이나 옷감을 줘도 받지 말고 그밖에 아는 사이에는 명목이 있는 선사(膳賜)만을 받고 명목이 없는 선사는 받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고사(古事)에 나오는 예를 하나 더 들어보기로 하자.

공자(孔子)의 제자이며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대학(大學)을 쓴 증자(曾子)가 퇴역하여서 노(魯)나라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헌옷을 입고 농사를 짓는다는 소식에 임금은 그에게 작은 고을을 떼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호의를 사양하고 말하기를 “남의 것을 받는 자는 항상 그를 두려워하게 마련이고, 남에게 주는 자는 항상 남에게 교만할 수 있다”라고 말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증자는 족히 그 절개(節槪)가 대단하다”라고 칭찬을 하였다는 고사가 오늘에 전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여기에서 그 옛날, 서양 사람들의 ‘사랑의 선물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Byron)은 많은 여인을 사랑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베니스에서 전세든 집 주인 부인도 사랑했다. 이에 바이런이 그 여인에게 아름다운 보석 목걸이를 선사하였는데 며칠 후 그 집 주인이 바이런에게 보석을 사라고 했다. 바로 그 목걸이는 집 주인의 부인에게 준 목걸이였다. 바이런은 값을 깎지 않고 목걸이를 사서 그 여자에게 다시 선물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정녕 나는 해보지 못한 멋진(?) 선물이고, 뇌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선물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대신해 기대하는 것이 없고 받지도 않는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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