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대검찰청이 양형백서를 통해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선고된 살인, 강도, 뇌물, 횡령·배임, 성범죄 등 5개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준수현황을 분석한 결과 뇌물죄의 경우 분석대상 판결문 401건 중 38건(9%)만이 양형기준을 준수했고, 나머지는 양형기준을 따르지 않거나 판결문에 양형기준에 따르지 않은 사유를 제대로 적지 않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아울러 횡령죄의 경우 분석대상 판결문 1937건 중 613건(32%), 배임죄의 경우 412건 중 105건(26%)만이 양형기준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반면 살인죄는 81.2%, 성범죄는 70.9%, 강도죄는 63%로 뇌물죄나 배임죄보다 양형기준을 잘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법이 힘없는 사람에게는 엄하고, 힘 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양형은 무엇이고, 양형기준이란 무엇일까? 대법원 홈페이지에 보니 양형은 법원이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해 법정형에 따라 가중, 감경 등의 사항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선고할 형을 말한다고 돼있고, 양형기준은 비슷한 형사사건의 경우 과도한 양형의 차이를 방지하고 국민들의 건전한 상식이 반영된 양형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일정한 양형기준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고 돼있다. 그래서 대법원은 2007년 4월 양형위원회를 출범시켜 한국에 맞는 양형기준제의 기본 방식을 결정하고 살인, 뇌물, 성범죄, 강도, 횡령·배임, 위증, 무고 등의 죄에 대해 양형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11년에는 전체 형사사건의 40% 정도에 해당하는 사건에 양형권고안을 확정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그러기에 양형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검에서 발표한 양형백서가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국민이 느끼는 법 감정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힘 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엄한 것이 우리나라 법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 10대 재벌총수들이 횡령이나 배임 또는 뇌물죄로 구속이 되더라도 경제발전에 이바지 했다니, 사회공헌이 많다느니 등의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대부분 집행유예처분을 내리거나, 설령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또다시 이유를 붙여 형집행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이 상식처럼 돼있다. 그것도 안 되면 대통령특별사면이라는 제도를 통해 풀어주는 것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에서는 무슨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해괴망측한 이유를 붙여 단 한 사람만 특별사면을 해 준적도 있다.
반면에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법이 엄하기만 한 것 같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소위 노숙인이라고 하는 우리 벧엘 식구들 상당수는 대부분 한 두 개 정도 전과를 가지고 있다. 죄목도 앞에서 말하는 힘 있는 사람만이 저지를 수 있는 횡령이나, 배임, 뇌물죄는 절대 아니다. 대부분 사기, 폭력, 무전취식, 절도 등 엄하게 양형기준을 지킨 것들이다. 어떤 범죄든지 법을 어겼으니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학교(교도소)를 다녀왔다면서 한참동안 보이지 않던 아저씨 한 분이 찾아왔다. 무슨 죄로 학교에 가게 됐냐고 물으니 동네슈퍼에서 맥주 몇 병을 들고 갔는데(외상으로 가지고 갔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것이 절도죄가 돼 다녀왔다는 것이다.(이 분의 경우는 전과가 많고, 집행유예 기간이어서 경미한 범죄임에도 실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이다.) 또 한 분의 경우는 고물수집이 직업인데, 고물을 수집하다가 도로변에 보일러 기름통이 나와 있길래 버려진 것인 줄 알고 그냥 리어카에 실고 갔더니 다음날 경찰이 찾아와서는 도난 신고가 들어왔다며 졸지에 도둑이 돼 다녀왔다는 것이다. 맥주 몇 병이든, 기름통이든 법을 어긴 것이 분명하면 법을 어긴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법의 심판이 힘 있는 사람이 법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힘없는 사람이 법을 어긴 것에는 엄하게 적용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소위 큰 도둑은 풀어주고 작은 도둑만 잡는 꼴이라면 우리나라를 법치국가라고 하겠는가? 이렇게 되면 누구든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힘을 가지려고 하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가 좀 더 공정한 사회 아니 법치국가가 되려면 양형기준을 지키는 것도, 한 발 더 나아가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미국의 라과디아(Laguardia) 판사의 판결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번은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가 재판을 받게 됐다. 판사가 법정에서 노인을 향해 늙어가지고 염치없이 빵이나 훔쳐 먹고 싶습니까? 라고 한마디를 던졌단다. 이에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때부터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라고 대답했단다. 판사가 이 노인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당신이 빵을 훔친 절도행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됩니다. 라며 판결을 내렸단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인간적으로 판사가 용서해줄 줄 알았는데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아니 이게 왠일인가? 판사가 판결을 내리고 나더니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그 벌금은 내가 내겠습니다. 내가 그 벌금을 내는 이유는 그 동안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벌금입니다. 나는 그 동안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오늘 이 노인 앞에서 참회하고 그 벌금을 대신 내겠습니다. 이어서 판사는 이 노인은 이 곳 재판장을 나가면 또 빵을 훔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 모인 방청객 여러분들도 그동안 좋은 음식을 먹은 대가로 이 모자에 조금씩이라도 돈을 기부해 주십시오. 라고 했단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인 방청객들도 십시일반 호주머니를 털어 모금을 해 무려 47달러나 되는 돈이 모아졌다고 한다. 이 일화처럼 우리사회도 양형기준을 넘어 약자들을 배려하는 법이 적용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