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목사

지난 해 말 우리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 중의 하나가 안녕하십니까? 라는 대학 게시판에 나붙기 시작했던 대자보였다. 이 대자보는 80년대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자는 등의 선동적인 대자보와는 달리 아주 평이하게 오늘 안녕하냐는 질문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안녕하지 않다는 역설적인 대자보였다. 이렇게 시작된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는 대학을 넘어 고등학교까지 아니 사회전반에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자각으로 한 때 유행어처럼 번지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사회가 안녕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라는 대자보 말고도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여러 수치들이 있다.

첫째로, 올해 가계부채는 1000조 원를 넘어서 이자만 50조 원이 된다고 한다. 여기에다 개인가처분소득에 대한 부채비율은 136%에 달해 국민 대부분이 더 이상 빚을 낼 수도 없고 당장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위기가 닥친다면 전 국민이 파산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둘째로, 국가부채는 토건자본의 배만 불렸던 4대강 사업 등으로 500조가 넘어서 국민 한 사람당 1000만 원이상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란다. 즉 우리나라 국민은 태어나면서 한 푼 써보지도 못하고 1000만 원의 빚을 지고 생을 시작하는 것이란다. 셋째로, 고용상태는 어떠한가? 불안정고용으로 하루하루를 파리 목숨처럼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53%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다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 가구는 빈곤가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빈곤층은 어떤가?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빈곤율은 16.5%로 경제개발기구(OECD) 평균인 11.3%를 훨씬 웃돌고 있다. 즉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이 약 410만명 정도라는 것인데 이중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빈곤층은 고작 135만 명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2000년대 중반 150만명을 웃돌던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2011년 148만명, 지난해에는 135만명선까지 곤두박질쳐 최근 10년간 가장 적은 규모라는 것이다. 이렇게 수급자가 줄어든 것이 빈곤 문제가 해결되어 줄어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층은 여전히 전체인구의 7.8%인 410만명선이고, 통계청이 계산한대로 상대 빈곤율은 몇 년째 15% 안팎으로 그대로인데 기초생활수급자 수만 줄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생활이 나아진 것도 아닌 채로 사회안전망 밖으로 밀려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수치를 반영이라 하듯 얼마 전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죄송하다는 편지와 함께 밀린 월세를 봉투에 담아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넘어져 골절상을 당해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큰 딸은 당뇨로 고생했고 작은 딸은 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그런데 어머니가 벌고 작은 딸이 벌 때는 최저생활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골절상을 입어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세가 월 38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인상됐다는 것이다. 3인가구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최저생계비 132만 9118원보다 소득인정액이 낮아야 하는데, 이 가구는 월 150만원정도 되니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뭐가 그리 죄송하다는 것일까? 도리어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 사회를 향해 뭐라고 한마디 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헌법 제34조는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또 사회권 규약 제11조는 모든 사람은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러한 권리의 실현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라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을 최저생계비로 빈곤층에게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보다는 국민권익위원회,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부처합동으로 복지부정신고센터를 운영하며 부정수급을 적발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허선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교수는 부정수급자는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 연간 8조원대의 예산이 투입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정수급 액수는 70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법 상 그 취지가 모든 국민에게 최저생계비를 권리로서 보장한다고 돼 있지만 다양한 시행령과 시행규칙, 수급자격에 대한 장벽이 취지 실현을 막고 있다는 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에게 재산이나 소득이 있으면 실제 부양여부와 무관하게 수급자의 소득에 간주부양비를 책정해 그만큼 수급비를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박탈한다. 또 수급자에게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실제 근로소득이 없더라도 추정소득을 책정해 수급비에서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박탈한다. 재산의 증가가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해당 재산이 기준을 넘을 경우 월 소득으로 환산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낮은 최저생계비와 재산기준 속에서 결국 가장 밑바닥까지 치닫지 않는 이상 도움이 되는 복지제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즉 절대빈곤층의 대부분이 부양의무제에 발목을 잡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가 꿈을 빼앗긴 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고용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절대빈곤층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가장 큰 걸림돌인 부양 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 또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공공부조 및 많은 복지제도는 본인이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법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접근과 신청이 용이해야 한다. 바라기는 정부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꿔 매일같이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고된 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800만 빈곤층의 꿈을 빼앗지 않았으면 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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