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목사

지난해부터 벧엘의 집에서는 농업을 통해 울안공동체 식구들이 자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일명 텃밭관리사 양성과정과 귀농 희망자를 위한 도시농부학교를 시작했다. 첫 해에는 울안공동체식구들 대부분이 농촌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농업교육을 한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 다시 지긋지긋한 농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홍보부족 등으로 많은 식구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간신히 4명만이 수료하는데 그쳤지만 그래도 첫 시도 치고는 어느 정도 성공이다 싶어 올해는 심화과정으로 도시농부학교 2기 개강식을 갖게 된 것이다. 2기 도시농부학교는 1기와는 달리 이론교육보다 실습교육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짜고, 기독교 귀농본부와 함께 귀농을 위한 필수 교육 이수시간도 맞추는 등 교육이 끝났을 때 만약 있을지도 모를 귀농 희망자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짜임새를 갖춰 출발을 했다.

벧엘의집이 농업자활의 길을 모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야베스공동체가 시작될 때 금산공장 일부를 주말농장으로 조성하여 일반사람들에게 분양하고 노숙인들이 분양된 농장을 관리하게 함으로써 자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즉 주말농장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농장이 위치한 금산에서 멀리 떨어진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일상적으로 농장을 관리 할 수 없고, 각각 농작물이 파종시기가 다르고, 한여름 같은 경우에는 며칠만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잡초가 작물을 덮어버리기에 상시적으로 주말농장을 관리할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용해 노숙인 자활의 길을 열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주말농장의 외적환경과 농작물의 특성에 착안해 울안공동체 식구 중에 농사를 지어본 사람으로 하여금 잡초제거, 거름주기, 농약살포 등 농장을 관리하게 하고 주말농장주들에게는 일정금액의 관리비를 내도록 해 주말농장 관리자의 급여로 줬던 것이다.(당시 주말농장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벧엘의 집 후원자이거나 봉사자들로 주말농장을 꼭 해보겠다는 것보다는 벧엘의 집이 농업을 통해 노숙인 자활을 모색하는 것에 동의하고 협력하는 차원에서 동참했었다.) 이렇게 그저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된 노숙인 농업자활은 거리의 문제, 울안식구들의 농업에 대한 기피, 주말농장으로서의 적합하지 않은 땅, 규모의 경제 등으로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끝내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첫 번째 시도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농산물을 직접 생산해서 판매하는 1차 산업의 형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농업을 통한 노숙인 자활모델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땅 한 평 없는 노숙인들에게 농토를 임대하고 그곳에 농작물을 재배하는 형태로 자립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농업을 1차 산업이 아닌 도시민의 여가생활, 취미생활 및 농촌체험의 한 방법으로 이미 많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말농장 프로그램에 노숙인을 주말농장관리자로 결합시킴으로 농업을 3차 산업으로 변형시켜 일자리를 만들어 보는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창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1차 산업인 농업을 서비스산업으로 바꾸어 노숙인들을 서비스 종사자로 취업시키면 비록 농업에 종사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임금노동자와 비슷해지기에 변변한 기술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노숙인들에게는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현대 도시인들은 농촌에 대한 향수로 주말농장을 갖는 것을 희망하지만 정작 주말농장을 가져보려고 하다가도 농사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바쁜 일상에서 정기적으로 농작물을 관리할 수 없기에 포기해 버린다. 그러기에 만약 농장관리자가 있어 대신 농장을 관리해 주고 자신은 작물을 심는 것, 수확하는 것, 가끔 가족과 함께 농장을 방문해 여가를 즐기는 정도만 할 수 있다면 주말농장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노숙인들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농업을 통한 자활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는 것은 주말농장이 도시인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하고, 관리인이 일정정도의 수입이 보장될 수 있도록 농장규모가 어느 정도는 돼야 하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농토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전근교에는 그런 조건을 충족시킬만한 땅을 구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 아쉬운 부분이어서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란 꿈은 버리지 않은 채 옥상텃밭을 만들기도 하고, 한국도로공사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지으며 명맥만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정작 땅이 확보된다면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야베스공동체 실험에서 얻은 교훈인 모든 조건이 충족돼도 사람이 준비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적당한 땅이 준비되고, 관리비를 내며 주말농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어도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준비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뜻이 있어도 당사자들이 하려고 하지 않거나 체계적인 농업교육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땅보다 먼저 주말농장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당장 농업자활을 추진하기 보다는 도시농부학교를 열어 사람을 준비시켰던 것이었다. 샬롬.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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