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가 사마씨의 것①

사마소는 후주 유선을 안락공을 봉하고 살 집과 급료를 주고 비단 1만 필에 동비(童婢) 1백 명을 주었다. 그리고 아들 유요와 그의 신하 번건, 초주, 극정에게 후작을 봉했다. 후주는 감사의 절을 하고 대궐을 나왔다.
사마소는 내관 황호가 촉국을 말아먹었다는 사실을 앎므로 무사를 시켜 잡아와 저자에서 능지처참했다. 나라를 좀 먹고 백성을 해롭게 한 자는 철퇴를 내린다는 준엄한 충의정신을 강조한 진공의 고도의 전략이다.

곽과태수가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어 후주의 소식을 알아보니 후주는 안락공의 벼슬을 받았다. 황제가 항복하여 벼슬을 사는데 신자로써 구지 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곽과도 곧장 부하들과 함께 위국에 항복해 버렸다.
작호를 받은 후 안락공은 친히 사마소를 찾아와 후의에 감사하여 절하고 사례했다. 그러자 사마소는 연회를 베풀어 안락공을 대접했다. 악공들이 나와 위나라 음률을 연주했다. 무희들은 춤을 추었다. 분위기가 촉나라 것과는 판이한 위나라의 선율이 흐르자 귀화한 촉관들은 감창한 빛을 띄웠다. 그리고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안락공은 몹시 기뻐하며 웃고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사람을 홀리고 시험하는 재주를 타고난 진공은 이번에는 위악이 아닌 촉악과 촉무를 시켰다. 이를 보고 들으며 촉관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안락공 만은 음률과 춤을 즐기며 기뻐했다. 술이 취하고 분위기가 농밀해지자 진공은 가충을 향하여 가만히 말하기를

“안락공이란 작자는 어쩌면 이리도 정이 없고 못났단 말인가? 저런 위인 곁엔 제갈공명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소. 헌대 강유가 어찌 보필하여 황호와 같은 간사한 놈을 막을 수 있었겠소.”
가충이 미소로 긍정을 표시하니 사마소가 안락공에게 직접 묻기를
“안락공은 고국 생각이 나지 아니 하오?”
“이곳이 이렇게 즐거운데 고향 생각이 날 까닭이 있습니까?”
“무엇이 그리 즐겁소?”

“진공께서 이런 연회를 열어서 아름다운 무희와 춤추고 노래하니 이 보다 더 즐거울 데가 또 어디 있겠소?”
“오호호. 그렇군요.”
진공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저런 위인을 자룡이 백만 대군 속에서 왜 구해 냈을까 싶었다. 아두를 구했던 장판교를 사마소는 생각했다. 조자룡과 장익덕이 줄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안락공과 같은 위인이 있었기에 천하가 내 수중에 들어왔다. 좀 더 잘 나고 똑똑한 위인이 촉국의 왕자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거다. 제갈공명이나 강백약과 같은 인재들에 의해 탄탄한 대국으로 건재했을 것이다. 앞으로 안락공을 고맙게 생각해야지. 그래서 저런 머저리 같은 위인을 애완동물 기르기라 생각하고 여생이나 편케 해주자.’

한 동안 열락을 즐기던 안락공이 옷매무새를 고치려고 별실로 들어가자 극정이 뒤를 따라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어찌 촉국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셨습니까? 다음에 혹 물으면 울면서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선인의 분묘가 촉땅에 있어서 서촉을 생각하며 운다고 말하십시오. 그리하시면 진공은 폐하를 방면시켜서 촉으로 보내줄 것입니다.”
안락공은 극정의 말을 기억해 두었다. 늘 황호에게 길들여졌듯이 극정의 말도 기억해 두고 다시 술자리로 돌아왔다. 안락공이 제자리로 돌아와 술잔을 들자 진공이 물었다.

“안락공, 서촉 생각이 결코 나지 않는단 말이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속으로 무지무지하게 생각나고 가고 싶지요?”
“으흐흐흑. 선인의 분묘가 촉땅에 있으니 어찌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서쪽을 바라보고 날마다 생각하고 운답니다.”
안락공은 극정이 시킨 대로 하였으나 눈에서 눈물은 조금도 보이지 아니했다. 다만 억지로 눈물을 짜는 시늉을 애써 했다. 그리고 눈물이 나오지 아니하자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진공은 안락공과 극정이 별실로 갈 때 사람을 붙여서 엿들어 오게 해서 둘이 주고받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비꼬아 말하기를
“안락공은 어쩌면 극정이 시킨 대로 꼭 같이 흉내를 잘 내오? 극정이 시켜서 한 것이지요?”

“아셨군요. 그렇습니다. 극정이 그리하라 시켜서 그랬습니다.”
이쯤 된 위인이니 희극배우가 따로 없었다. 철부지도 아니고 바보 멍텅구리도 아니었다. 좌중의 모든 사람이 안주 삼아 배꼽을 쥐고 웃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유비 현덕의 아들이란 말인가? 아니 4백 년 한실의 종묘사직을 이어가야 했던 만민의 희망이었단 말인가? 공명이 출사표를 줄줄이 써서 바친 주인이란 말인가?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었다. 위인이 이러하니 나라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국방이란 군대가 국경을 지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한 나라를 어거해가는 군왕의 정신과 능력과 마음 씀씀이에 국방은 달려있는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창업 보다 수성이 더 어려운 것이라고... 그 나라가 비록 창업을 창업주가 있어 이룩했다 할지라도 국기를 다지고 이어갈 후손이 영명하고 수성할 능력이 있어야 오래 동안 이어져 갈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뒤져보면 수성의 어려움을 역사는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건만, 후주의 일생은 거의 바보 백치에 가까운 왕 놀음이었다. 먹고 마시고 싸고 앵무새처럼 누가 써 준 각본을 입으로 말하며 지냈다. 그런데 그 각본을 써준 측근이 현명할 때는 가까스로 그 나라를 유지했으나, 황호와 같은 간사한 자를 만나고 보니 나라는 금방 망하고 말았다. 황호는 오로지 국정을 자기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후주에게 각본을 써준 것이다. 엄여라는 우장군을 만들어 낸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무속인을 데려다가 나라가 무너질 때까지, 그의 입을 바라보며 정치를 해대는 꼴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이와 같은 각본의 잘못으로 그 각본의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마구 읽어 댄 후주의 백치정치가 촉국을 망국으로 만든 것이다. 진공 사마소는 안락공이 백치에 가까운 위인임을 확인하고 털끝만큼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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