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중에서도 의료는 더욱더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기에 공공의료기관이든 민간의료기관이든 운영에 있어서 공익이 우선돼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에 보면 “공공보건의료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고 됐다.
즉 공공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의료기관도 의료라는 공익적 성격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고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민간의료기관이 정말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벧엘의집 희망건강센터에 한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휠체어에 실린 노숙인 한 분이 찾아 오셨다.
진료소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분의 상태는 한 눈에 보기에도 이미 진료소에서 치료해 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우선 무슨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등의 방법을 찾기 위해 언제 어디서 다쳤으며, 또 치료는 어디에서 어떻게 받았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분의 말에 의하면 진료소를 찾아오기 6일전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깨어 나보니 어느 정형외과 의원이었고, 발뒤꿈치 뼈가 부러졌으니 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는 말과 함께 약간의 응급처치를 한 후 퇴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대전역으로 가서 노숙을 하다가 다리통증이 점점 심해져 동료 노숙인의 안내로 진료소를 찾아오게 됐다는 것이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선 공중보건의사와 간호사에게 깁스를 한 다리상태를 확인해 보도록 했다.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진료소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자고 한다.
잠시 대책을 논의한 후,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좀 더 그 분의 상황을 알아야 하겠기에 진료실로 모시고 가서 조용히 상담을 시작했다. 찬찬히 발을 살펴보니 겉으로 보기에도 중증인 것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선 가족상황, 경제적 상황 등 그 분이 처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를 상당히 경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정도 아저씨의 상황을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고는 다시 어떻게 해서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살을 시도했다는 대답과 함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해 더 이상 질문을 포기하고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는 아저씨의 두 손을 꼭 잡아 줬다.
그리고는 진료소 담당 목사와 간호사와 함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급하게 찾기 시작했다. 우선 119구급대에 연락해 병원으로 호송할 준비를 하고, 역전지구대에 연락했다. 주민등록도 말소됐다고 하니 치료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지구대에 연락해 가능하면 행려환자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충남대학병원 공공의료사업팀 권지현 선생님과 협의해 모든 절차는 뒤로하고 우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잘 풀려가는 듯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충남대학병원이 아닌 그 근처에 있는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ㅅ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저씨의 휠체어를 가져다 달라는 전화였다. 아니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병원에 간지 얼마나 됐다고 퇴원한다는 것인가? 그것도 원래 가기로 한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연락이 왔으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그 분은 수술이 필요한 환자니 입원조치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ㅅ병원 응급실 관계자는 환자가 퇴원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충 감을 잡고 은근 협박을 했다. 우리나라 의료법에는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는 위법이니 당장 치료를 해 주라고 했다. 그러자 답변대신 전화를 뚝 끊어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 119구급대에 연락해 환자 이송을 담당한 대원과 통화를 했다.
그랬더니 충남대학병원으로 가는 도중 상황실에서 충남대학병원 응급실은 환자가 많아 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 인근 ㅅ병원 응급실로 갔다는 것이다.
혼자 움직일 수도 없는 분이기에 진료소 담당목사와 급하게 ㅅ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과 병원 건물 안을 샅샅이 뒤지며 아저씨를 찾기 시작했다. 응급실을 지나 휴게실, 입원실로 가는 통로 등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분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모 목사로부터 아저씨를 찾았다는 전화가 왔다. 바로 응급실 밖의 벤치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보호자가 없이는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하며 자신을 휠체어에 태워 병원건물 밖 벤치에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료소로 다시 오기 위해 택시비를 꼬지(구걸)했지만 혼자 택시를 탈 수 없어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아무리 민간병원이라고 하지만 모 정형외과나 ㅅ병원의 처사는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를 내팽개치는 정도를 넘어 아주 친절하게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실 밖 벤치로 끌어낸 ㅅ병원이나, 아무 후속조치도 없이 큰 병원에 가라며 퇴원시킨 모 정형외과나 정말 이래도 되는가?
이러고도 우리나라 민간의료기관이 돈이 아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저씨와 함께 병원을 나오면서 보았던 프란시스코 교황의 대전방문을 환영한다는 대형현수막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