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국민연금공단 동대전지사장

아침에 출근해 업무를 시작하려고 책상 위 컴퓨터를 켜면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을 새삼 실감한다. 본부 및 유관기관에서 접수된 수많은 공문들, 사내 전자우편, 각종 메신저, 게시판, 알림 쪽지 및 신문 스크랩까지……. 출근 시 상쾌했던 기분은 어느덧 사라지고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이 끊임없이 솟구치고, 직장에서의 피로감과 어지러움은 아침부터 시작된다. 주변에 넘쳐나는 정보들은 그야말로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그물같이 옥죄어 오고, 여기다 덧붙여 직장 내 대인관계들이나 힘든 민원인까지 접하면 그야말로 온종일 파김치가 된다.

물론 이런 수고의 대가로 월급을 타가는 것이니까 실업자들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힘들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힘들게 해석할 필요가 없는 정보들이 습관처럼 무분별하게 생산되고 그로 인해 정작 충실해야하는 본연의 업무는 형식에 가려 본말이 전도된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주장이다.

정보, 특히 조직 내에서의 정보는 상호간의 소통을 전제로 생산되고 전달돼야 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전달과 소통은 분명히 다르다. 즉, 소통의 성패는 말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말하려는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듣는 사람이 공감하지 않으면 소통의 채널은 이미 끊긴 것이다.

필자가 요즘 접하는 문서들의 주요 특징은 아주 많은 정보들을 최대한 많이 담아내려 하고 있고 그 양과 전달 횟수도 점증적으로 늘어만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시행정의 전형적인 예로서 미뤄 짐작컨대 ‘우리는 보다시피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또한 이를 분명히 상대방에게 차질 없이 전달했다’며 문서를 생산하는 자가 본인의 결재권자나 상부 감독자에게 인정받으려는 보여주기식 및 책임면피성 일방통행에 불과한 느낌이 있다.

대학시절 경영학을 전공했던 교수님의 말씀 중에 감명 깊게 기억에 남는 말이 초우량기업(超優良企業)의 특징인데, ‘초우량기업에서의 모든 보고서는 1장을 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다. 보고서를 어렵게 작성하거나 장황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고자 자신도 주요 핵심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모든 자료나 정보를 단순나열식으로 다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상대방이야 정확히 이해하든 말든 ‘전달했다’는 사실 자체에만 자족(自足)하는 것에 불과하다. 메시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명해서 무엇을 주장하는지 상대가 즉각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정 상대가 가장 알아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가 들어줄 시간이 충분한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을 할 때는 선문답을 날려도 좋고 시적으로 표현해도 좋지만, 멋진 말로 포장하고 예쁘게만 이야기하다보면 본질이 흐려져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수가 있다. 기업의 문제 중 70%는 의사소통의 장애로 야기되고, 경영자들은 실제로 70%의 시간을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

말은 쉽고 짧게 해야 한다. 말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철저히 따져보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좋은 소통에는 왕도가 없다. 반성하고 관찰하고 시험해보고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한다.사람의 지혜가 깊으면 깊을수록 생각을 나타내는 말은 단순해진다.-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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