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홈리스월드컵 참관기 ② "꼴찌에게 박수를"
노숙인과 축구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 아무리 연관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내 대항전이면 몰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까지 가서 경기를 해야 했을까? 이건 가도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유독 나만의 생각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
지금 노숙인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축구경기가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자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알맞은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 그것이 아니면 일자리를 다시 가질 수 있도록 직업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자활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노숙인들에게 조기축구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축구도 아닌 멀리 칠레까지 가서 홈리스월드컵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 노숙인들이 홈리스월드컵에 참여하는 것이 정말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한 것일 뿐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와는 정반대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고 중요한 것이었다. 노숙인이라고 하면 우선 떠올리는 것이 우리와 다른 사람, 게으른 사람, 낙오자, 알코올중독자 등 이 사회에 부적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도 비록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인지는 몰라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보통사람이다.
단지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뿐이지, 가난하다고 사람 자체가 모자라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들도 노숙인으로 전락하기 전에는 한 가정의 훌륭한 가장이었고, 잘 나가는 사장님이었고, 번듯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가 보증을 잘못서서, 사업이 망해서, 건강이 악화돼서, 실직하는 등 인생이 뒤틀려버려 이 사회부터 밀려나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한 것뿐이다.
그러니 현재는 비록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해서 취미생활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거나 문화생활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그들도 충분히 취미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문화를 향유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이런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이 더욱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랬을까?
벧엘의집 울안공동체에서도 끊임없이 벧엘 족구팀을 만들기도 하고, 보석 같은 남자들이라는 마당극단을 만들어 공연을 하기도 하고, 도개걸윷모라는 중창단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기타 동아리를 만들어 보고, 문학반도 만들었었다. 특히 올해에는 홈리스월드컵 대표선수 선발전에 참여하기 위해 벧엘 FC라는 풋살팀도 창단했던 것이다.(비록 국내 선발전에서 패배해 국가대표로는 선발되지 못했다.) 이렇듯 스포츠든, 마당극단이든, 문학반이든, 중창단이든 노숙인들에게는 단순히 취미활동을 넘어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숙인은 노숙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실패와 좌절로 인해 자신감은 없어지고, 의기소침해져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형편없이 무너져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무리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그 일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해 버린다. 그러기에 무작정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먼저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주므로 당당하게 이 사회와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일자리를 제공한다거나 직업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스포츠 활동이나 문화 활동과 같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심리재활을 위한 프로그램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노숙인의 자활은 비록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가야만 완전한 자립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다.(이런 깨달음은 이미 오래전 사회적기업인 야베스공동체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생산 공동체 실험을 통해 알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칠레 홈리스월드컵 참여는 그 어떤 것보다 참여자들에게 자존감을 회복하는 좋은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이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 칠레 홈리스월드컵에 참여한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홈리스월드컵을 계기로 이제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말이었다. 칠레 홈리스월드컵에 동행취재를 담당했던 동아일보 유재영 기자에 의하면 “최신영(33) 씨는 내 눈높이에서 가깝게 대통령 궁을 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무척 좋다고 말했다.
거리 어디에서든 행인들과 대회 자원 봉사자들은 선수들을 반겼다. 선수들은 이미 산티아고의 주인공이 됐다. 이곳에서 자신이 행사의 주인공임을 느끼며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입국 첫날을 보낸 선수들은 이튿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선수들을 이끈 이창용 코치는 모든 자원 봉사자와 관계자, 행인들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선수들이 마음을 연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고 전하고 있다. … 한때 유도 선수였던 정종수(37) 씨는 화려한 춤사위와 쇼맨십으로 각국 선수단과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었다. 한국 경기가 끝날 때마다 정 씨가 ‘강남스타일’ 춤을 추자 이를 보려는 칠레 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바다에서 선원생활을 하기도 했던 정 씨는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세상과 등졌는데 칠레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됐다며 웃었다. 정 씨는 넘어진 상대 선수들을 꼭 일으켜 세우고, 승리한 선수들에게도 반드시 엄지를 세워 보여주고 껴안았다. 각 팀 매니저 회의에서 조직위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한국의 정 씨는 경기에 져도 춤을 춘다. 진정 홈리스 월드컵 취지에 맞는 선수다. 본받으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번 홈리스월드컵 참가는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닌 노숙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비록 10전 1승 9패라는 참가국 중 최하위 성적을 거뒀을지는 몰라도 그 누구도 절망하지 않고 자신감이라는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