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장계대교 → 옥천 안터선사공원 (11㎞ / 6시간)

[대청호오백리길 10구간]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산 속을 휘젓는 바람소리가 거세다. 매서운 칼바람이 옷 속을 파고든다. 자연스럽게 몸이 움츠러든다. 아직 몸이 덜 풀린 탓에 걸음걸이가 무겁다. 스마트폰 날씨 앱 새로고침을 누르니 기온은 영하 6도를 가리킨다. 바람 탓에 체감기온은 더 낮지만 지금이 겨울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괜찮다.

걷다보면 땀이 나니 추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대청호 오백리길에 서면 가장 걱정되는 게 날씨다. 날씨가 흐리면 걷는 기쁨이 아무래도 덜하다. 다행히 10구간 출발점에서의 하늘은 ‘맑음’이다. 가을하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파랗다. 그래서 강 빛깔도 곱다. 푸르다.

 

◆ 거대한 자연과 마주한 순간

이번엔 대청호 오백리길 10구간이다. 충북 옥천군 장계리 장계대교에서 참나무골산 능선을 타고 이슬봉, 며느리재를 거쳐 석탄리 안터마을까지 약 11㎞를 걷는 구간이다. 대부분이 산길이다. 10구간은 ‘며느리눈물길’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10구간 중간쯤에 있는 며느리재에 얽힌 전설이 있나보다. 옥천향토전시관과 탑신제당, 청석교, 기와 굽는 가마터, 호숫가 산책로 등으로 이뤄진 장계국민관광지를 슬쩍 둘러보고 길을 잡는다.

 

장계대교를 가로질러 참나무골산 입구에 선다. 구간 첫 걸음부터 산행이다. 앞에 놓인 나무계단이 무척 위압감을 준다. 가파르다. 처음 보였던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 올라왔다. 빨리 굽이치는 금강을 내려다보고 싶어서였는데 실수였다. 9시 방향으로 꺾이는 길, 다시 끝없는 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한 순간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중간 중간 놓여있는 벤치는 그냥 놓여있는 게 아니었다. 천천히 숨 고르며 차근차근 오르라는 의미다.

 

 

 계속 오르막이라 힘이 들지만 그래도 왼쪽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어 위안이 된다. 실개천이 모여 큰 강을 이루는 장엄한 자연의 섭리와 마주한다. 시점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금강 큰 물줄기의 아름다운 곡선은 장관을 연출한다. 말 그대로 도시에선 볼 수 없는 ‘그림 같은 풍경’ 그 자체다. 산 중턱에서 바라보면 옥천 안내천에서 흘러온 물이 장계대교 아래서 금강 큰 줄기와 만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산길을 따라 대략 1시간 남짓, 어느덧 참나무골산 정상에 올랐다. 해발 419.2m 표지판이 보인다. 땀 좀 식히고 다시 이슬봉으로 향한다. 해발 460m 정도인 이슬봉에선 금강을 품은 산들이 더 시원하게 펼쳐진다. 길 옆 바위에 걸터앉아 풍류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슬봉에서 조금 더 가면 금강 물돌이가 절정을 이룬다. 대청댐 건설로 섬마을이 된 옥천 오대리 마을을 끼고 크게 휘돌아 곧게 내달려 온 금강 물줄기가 다시 한 번 크게 꺾이는 곳과 만난다.

대략 3.5㎞ 지점. 이곳이 10구간의 백미다. 위험하지만 오솔길에서 조금 벗어나 절벽 바로 앞까지 가면 시선을 사로잡는 장관이 펼쳐진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의 끝에서 고개를 들고 동공을 확장하면 장쾌한 금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에서 금강은 고요한 듯 분주하고 여린 듯 강하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 10구간이 며느리눈물길인 이유

금강을 내려다보며 걷다보면 한 가지 느끼는 게 있다. ‘내 앞에 금강은 하나인데 내 눈에 금강은 수천 개’라는 것. 볼 때마다 다르다. 참나무골산 정상에서 볼 때 다르고 이슬봉에서 볼 때가 또 다르다. 며느리재로 가는 길에서 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재미를 더한다. 직선과 곡선의 비율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금강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이유다. 10구간 길이 U자형이어서 더 그렇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구간 길마다 이름이 있는데 10구간은 며느리눈물길이다. 이슬봉에서 311봉, 399봉을 차례로 지나 출발점에서 약 6.5㎞ 지점, 대청호 오백리길 9구간과 살짝 겹치는 곳에 ‘며느리재’라는 푯말이 서 있다. 시작부터 궁금하긴 했다. 왜 이 길이 며느리눈물길인지 말이다. 처음엔 산길이 워낙 험해 '시월드'에서의 고된 시집살이를 빗댄 말인가 했다. 물론 아니다.

이 고개가 며느리재로 불린 사연이 하나가 있다고 한다. 얘기는 이렇다. 옛날옛날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이 고개를 넘고 있었다. 그런데 비가 내려 며느리의 옷이 자꾸 살갗에 달라붙는 것이었다. 이를 본 시아버지가 순간 욕정을 참지 못해 며느리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며느리가 이곳 계곡 아래로 몸을 던졌다. 참 웃기면서도 슬픈, 웃픈 전설인데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재미삼아 웃픈 전설에서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이어가며 안터마을길로 향한다. 10구간의 종점에 이르기 전 가파른 내리막을 탄다. 10구간 처음 오르막과 같은 기울기로 급경사라 조심해야 한다. 강변으로 내려오면 산책길이 잘 나있다. 어찌나 추웠던지 이곳 금강은 얼었다. 석탄리 안터마을 안터교 아래, 얼어 있는 강 중간쯤에선 빙어 잡이가 한창이다. 마을사람들은 경험치로 위험한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불안불안하다.

 

 

◆ 금강풍경은 퍼즐이 되고

10구간의 여정은 대략 6시간이 걸렸다. 안터마을 입구에는 대청호에서 발견된 선사유적인 지석묘와 선돌을 옮겨 놓은 공원과 복원한 초가집 등을 볼 수 있다. 석탄리 고인돌공원에서 10구간을 마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산행길이라 조금 힘이 들지만 금강이 선사하는 경이로운 풍경은 이 고된 시간을 잊게 만든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퍼즐조각과 같다. 금강이 퍼즐의 경계선이 되어 다양한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 그런데 이 퍼즐조각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다. 대청호 오백리길 21개 구간, 이제 네 조각을 퍼즐 판 위에 내려놓았다.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는 마음으로 이제 다시 다섯 번째 여정을 준비한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동영상=이기준·이승훈 기자

 

[섬이 된 땅, 오대리 이야기]

대청댐에서 바라본 대청호는 말 그대로 호수지만 전북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물이 이곳에 이르기까진 참 많은 굴곡을 겪는다. 대청호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옥천지역에선 이 굴곡이 굉장히 심하다. 쉴 새 없이 굽이쳐 흐르고 또 굽이쳐 흐른다. 지그재그, 갈지자(之)형으로 말이다.

10구간 며느리재에서 금강 너머를 바라보면 섬이 된 땅 하나가 보인다. 옥천 오대리다. 동이면 청마리, 안남면 종미리(둔주봉 한반도전망대)에서 크게 휘돌아 다시 오대리를 끼고 물길이 바뀐다. 오대리는 대청댐이 만들어지기 전, 약 100여 가구가 살던 큰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0가구가 채 안 되는 오지마을이 됐다. 1980년 대청댐이 만들어지고부터다. 터골, 버들개 부락 등 마을 어귀에 물이 차오르자 마을 사람 대부분이 강 건너 인근 마을로 이사했다. 벌써 35년 세월이 흘렀다.

오대리는 고립된 땅이다. 마을 한 부분이 육지와 연결돼 있지만 7∼8㎞를 걸어야 하고 산길인 탓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 길로 면사무소에 나갔다 오면 하루해가 저문다. 그래서 이곳에선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마을 사람들이 순번을 정해 배를 운행한다. 겨울에 강이 얼거나 가뭄이 들어 물이 마르면 낭패다. 500∼600m를 걸어 나와야 한다. 차가 다닐 수 없으니 짐이라도 있으면 여간 고된 게 아니다.

"공기부양정, 요 신통방통한 놈 타고 설 쇠고 왔지요"

오대리 주민들의 교통수단 공기부양정.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이 마을에 새로운 교통수단이 생겼다. 2톤급(10인승) 수륙 양용 공기부양정이다. 마을 사람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K-water가 공기부양정 건조 비용을 지원했다. 군사용으로 개발된 공기부양정이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기는 이곳이 국내에서 처음이다. 물이 얼거나 강물이 말라도 거뜬히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올 설엔 마을 사람들이 “요 신통방통한 놈”을 타고 설 쇠러 육지로 나왔다. 바리바리 짐 싸들고 위험천만한 얼음 위를 걸어갈 걱정 없이 말이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10구간 이렇게 걸었습니다]
산행일 : 2015년 2월 1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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