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건강센터 14차 총회를 하면서)

목사

우리사회에서 빨리 없어져야 할 기관인 노숙인 무료진료소 희망건강센터가 올해로 14차 총회를 맞게 됐다.

우리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최소한 없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17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미 때를 놓쳤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쉬워해야 했던 일들, 다행히 한 생명을 살렸다는 뿌듯함과 안도에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일들 등… 유난히 이 총회는 과거 어느 총회보다 지난날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

희망건강센터와 같은 기관들이 없는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이라며 빨리 없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했지만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건강센터는 진료장비가 늘어나고 조직은 체계화 되고 상근인력이 생기고 협력병원이 늘어나고 공중보건의사가 파견되는 등 없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런 진료소를 보면서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참 난감하기까지 하다.

희망건강센터의 태동과 발전은 시대적 상황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 1999년 IMF경제체제로 인해 대전역을 중심으로 노숙인들이 늘어나면서 보건의료단체들과 벧엘의집이 의기투합해 이틀 동안 대전역광장에서 노숙인 무료검진을 실시했다. 그런 다음 검진당시 조사했던 설문지와 검진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대전지역 노숙인 무료진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래서 그해 9월 벧엘의집 지하에 청진기 하나 없이 몇몇 의사들과 함께 무료진료소를 연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무료진료활동이 지난 2002년에는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조직화된 활동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노숙인들의 건강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희망진료센터라는 이름으로 창립총회를 갖게 됐다.

창립총회 당시에만 하더라도 변변한 진료장비 하나 없었지만 지금은 초음파기, 심전도기, 고압멸균기, 치과장비, 안과 검진장비, 물리치료기 등 웬만한 로컬의원 더 많은 진료장비를 갖춘 그야말로 병원이 돼 버렸다. 또한 처음에는 밀려드는 환자들에게 진단과 투약이라는 단순한 치료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단순치료를 넘어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활동과 예방활동, 만성질환자 관리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진료소에서 해결할 수 없는 수술이나 입원치료, 검사 등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진료소와 협약을 맺은 협력병원 등에 연계해 어떻게든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거기에다 지난 2005년 서남아시아지역이 지진해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을 때 스리랑카 바티콜로지역에 감리교 남부연회, 대전이주민노동자센터와 함께 조직한 긴급구호 및 의료팀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등 3세계 의료구호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특별히 지난해에는 세월의 결과물인지 몰라도 초창기에 학생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학생회원들 중에 몇몇은 어엿한 전문의가 돼 이제는 협력병원으로, 진료의사로 참여하는 성과도 있었다.

17살이 된 희망건강센터만 보면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렇게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동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동참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동안 마음으로 몸으로 함께 해준 모든 동지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희망건강센터의 발전을 마냥 즐거워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희망건강센터가 출발할 당시부터 빨리 없어지는 사회를 꿈꿨기 때문이다. 희망건강센터와 같은 무료진료기관이 없는 사회 다시 말해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건강불평등이 심화되고 의료민영화의 파고는 더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다 보험재정은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진료비는 더 올라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가속화 된다면 희망건강센터는 없어지기는커녕 그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헌법 36조 3항에 보면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돼 있다. 국가는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공공의료 확대를 통해 국민의 건강권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희망건강센터는 이번 14차 총회를 하면서 지금까지 진료소의 역할이 증대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헌법 36조 3항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전의 경우는 대전시가 추진하고 있는 대전시립병원 설립추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공의료 확대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또한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의료민영화를 막아내는데도 앞장서야 한다. 그래서 정말 없어도 되는 기관, 헌법36조 3항이 실현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럴 때만이 처음 진료소가 고백했던 모든 사람이 아무 제약 없이 아프면 맘껏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17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동지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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