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학교에 학원까지, 과한 교육에 멍드는 아이들-‘사교육 없는’ 시범학교 지정 취지 살리려면, 내실 있는 프로그램과 수준 높여야교육당국이 매년 ‘사교육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음에도 되레 사교육 시장은 커져만 가는 기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교과교실제, 학교다양화, 교원평가제, 입학사정관제, 사교육 없는 학교, EBS교육 등 공교육 경쟁력 강화 정책을 연신 토해내고 있으나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사교육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미흡하다는 것이다.◆사교육 없는 학교가 학생들 잡는다(?)사교육비를 절감하고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운영되는 ‘사교육 없는 학교’가 교육수요자들만 지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행 취지와는 다르게 사교육을 대체하기 위한 방과 후 수업은 수업대로 받고, 늦은 시간까지 학원 수업을 들어야 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6월 ‘사교육을 잡겠다’며 전국 457개 초·중·고교를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했다. 대전 14개교, 충남 25개교, 충북 17개교 등 충청권에선 모두 56개교가 학교 당 8000만~1억 원 정도를 지원받고 있다. 교과부는 이들 학교에 정규 교육과정 운영을 강화하고 수요자 중심의 방과 후 수업 프로그램을 제공, 사교육 수요를 학교현장으로 흡수해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는 복안이었다.하지만 사교육 없는 학교 시행 1년을 목전에 두고 교육수요자인 학생들은 회의적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대전의 모 중학교에 재학 중인 A(14) 군은 사교육 없는 학교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있다. 이 학교의 방과 후 수업 참여는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에 한해 자율적으로 진행되지만, 실상은 교장과 교사들의 ‘등살에 떠밀려’ 학생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다는 게 A 군 부모 B(48·여) 씨 설명이다. A 군은 방과 후 수업으로 인해 학원 수업 시간을 뒤로 미루어야 했고, 학교를 마친 뒤 다시 학원 수업 하느라 시간만 더 늦어져 파김치가 돼야 귀가할 수 있다.B 씨는 “사교육 대체 프로그램으로 학교에 개설된 강좌가 사교육 시장보다 수준이 더 높아 보이지 않아 학원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보내고 있다”며 “늦은 귀가 등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 방과 후 수업을 받지 않게 하고 싶지만 학교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예체능계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C(15) 양 역시 방과 후 수업에 본인이 필요한 과목이 없지만 학교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저녁에 따로 학원을 다니고 있다.사교육 없는 학교 관계자는 “방과 후 프로그램 참여는 학생들의 선택 사항으로 학교가 학생들에게 수업 참여를 강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여건상 모든 학생들을 다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최대한 사교육을 흡수할 수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교육전문가들은 “사교육 없는 학교 지정의 취지를 살리려면,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할 수 있는 공교육의 질적 향상과 경쟁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교육수요자들 왜 사교육에 의존하나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사교육을 권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잘못된 입시정책과 부실한 학교 교육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입시를 위해선 현재 공교육으로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학생과 학무보들이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사교육 없는 학교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교육 수요자들이 ‘왜 사교육에 의존 하는가’부터 살펴봐야 한다.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624가구(자녀 수 1158명)를 상대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해 최근 발표한 ‘사교육 시장의 현황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38.0%는 사교육 참여 이유로 정부의 입시 정책을 꼽았고, 학교 교육 부실(22.9%)이 뒤를 이었다.또 ‘방과 후 학교가 사교육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8.9%만이 그렇다라고 답했다.특히 비용 대비 성적 향상이 좋다고 여기는 방법으로는 사교육(86.6%)이 방과 후 학교(13.4%)를 압도했다.◆공교육 수준 높여야공교육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질적 향상이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교육 전문가들은 ▲공교육 예산의 부족 ▲공교육 담당자들의 교육 외 과업에 따른 교재 연구 부족 ▲사교육의 지나친 팽창 ▲아이들의 변화된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공교육 내용 등이 교육수요자들을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는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교원단체와 상당수 교사는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한 일선 교사는 “내신성적을 위한 과외와 특목고 입시를 위한 선행학습 등 사교육비를 촉발하는 원인은 결국 대입경쟁으로 귀결된다”며 “현실적으로 볼 때 획일적 학생평가방식으로는 사교육시장을 잡기 어렵다”고 꼬집었다.이어 “사교육 없는 학교의 취지는 좋지만 현재 지정 운영되는 학교의 방과 후 수업의 질이 높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방과 후 프로그램에 지원되는 예산도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 후 개선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