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문의면 노현리습지공원~문의취수장~양성산~
문의문화재단지~양성산 독수리바위~문의대교 9㎞ 4시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사계절. 봄엔 생기가 감돌고 여름엔 자연의 생명력이 왕성해진다. 가을엔 풍요가 익고 겨울엔 긴 휴식이 퍼진다. 사계절 가운데 계절의 여왕을 꼽으라면 언제를 꼽을 수 있는가. 선뜻 답을 내놓지 못 할 것이다. 십중팔구 계절의 여왕이 언제냐고 물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5월’이라 말한다. 봄의 문턱을 넘어 여름으로 들어설 때를 의미하는 단어를 찾지 못해서다. 그렇다면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할까? 그 답은 대청호반에 있다.

▲문의문화재단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청호.

 

[ 대청호오백리길 20구간 ] 문의과거마을길

호반 따라 시간여행
숲길 따라 힐링여행

눈부신 신록과 호반길이 유혹한다. 대청호 최북단을 품고 걷는다.
바람따라 걷다보면 호수와 숲과,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만난다.
양성산 초입서 만난 아이들의 웃음과 노랫소리, 힐링산책의 절정.

 

▲노현리습지공원에서 출발, 3km 가량 호반길 산책로가 이어진다.

#. 왕성한 생명의 도약
사계절은 자연의 선물이다.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면 그건 최고의 선물이다. 다행히 우리는 이 최고의 선물을 항상 누리고 산다. 물론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움을 누릴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대청호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지도 모르겠다.

5월 중순, 대청호 오백리길 20구간을 밟았다. 대청호의 최북단이다. 충북 청주시 문의면 노현리 생태습지공원에서 문의대교까지 약 9㎞, 대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노현리습지공원 풍경

노현리 마을 입구에도 대청호의 수질을 정화하는 습지공원이 조성돼 있다. 다양한 수생식물이 군락을 이루는 인공습지도 있지만 자연적인 습지가 훨씬 더 넓게 펼쳐져 있다. 대부분 갈대와 억새밭인데 이곳에선 여전히 옅은 갈색빛 갈대·억새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래도 습지공원에 피어 있는 노랑꽃창포가 지금이 5월임을 말해준다.

▲ 대청호와 함께 걷는 산책로

노현리 습지공원부터 문의취수장까지 약 3㎞는 도로와 구분된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나무 울타리가 길을 인도한다. 왼쪽으론 대청호와 습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론 청보리가 넘실댄다. 간간이 지나칠 정도로 강렬한 빨강 꽃잎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양귀비가 ‘나 좀 봐 달라’며 유혹한다.

대청호반의 5월 아침은 눈도 즐겁지만 코도 호강한다. 아까시나무 꽃이 내뿜는 향이 은은하다. 기어이 꽃에 코를 대게 만든다. 물론 아까시나무 꽃은 이미 벌들이 점령하고 있다. 봄엔 벚꽃에 추근거리더니 이젠 아까시나무까지 독차지 했다.

 

 #. 양성산의 정기를 받으며
자연의 생명력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힘을 주는 기(氣), 에너지다. 유유자적 한적한 산책길을 걸으면서 ‘내 안의 나’를 깨운다. 문의취수탑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 냄새나는 마을이 펼쳐진다. 문의면 공공기관이 모두 밀집해 있는 미천리다.대청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많은 이주민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이곳은 포도농장이 유명한데 요즘은 아로니아(블랙초크베리) 같은 품종도 재배되고 있다.

▲ 미천리 새미실마을 풍경

최근 이곳에 큰 길이 나면서 소박한 마을 풍경은 사라졌지만 새미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방앗간이며 실개천이며 옛 모습이 남아있다. 문의면사무소와 문의119안전센터를 지나 산기슭을 오르면 단아한 자태를 뽐내는 성당(천주교 문의교회)을 만난다. 이제부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어느덧 산엔 녹음이 짙어졌다. 앙상한 가지만 남았던 나무에서 신록이 돋아나고 이내 산 전체에 그늘을 드리웠다. 초록 잎에 부서지는 햇빛이 싱그럽다. 산새들의 지저귐도 우렁차다. 고요한 듯 하면서도 온갖 자연의 생명들이 제 할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여기엔 아이들의 합창도 끼어 있다.

▲양성산 초입에서 만난 아이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행복감을 안겨준다.

마을 초등학교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나온 모양이다. 풀꽃으로 반지를 만들고 개울가에서 가재도 잡으며 자연의 기를 온몸으로 느낀다. 10여 분 정도 신록샤워를 하면서 산을 오르면 양성산과 작두산 갈림길이 나온다. 양성산 방면으로 다시 산을 오른다. 다시 15분 정도 오르면 양성산 정상과 팔각정자, 청소년수련원으로 갈라지는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청소년수련원 방향이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길이다.

 

 #. 과거마을에서 만난 ‘흥수아이’
양성산 숲속에서 몸 안의 나쁜 기운을 정화한 뒤 하산하면 넓은 주차장과 만난다. 문의문화재단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청호반이 또 하나의 절경이다. 입장료는 단돈 1000원. 아낄 이유보다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은 곳이다. 단지 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청호반의 절경이 압권이다. 북두칠성 모양으로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인공수초재배섬(물의 정원)도 호반의 정취를 더한다.

문의문화재단지는 역사테마파크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인해 수장될 위기에 있던 많은 문화자원들을 이곳에 복원해 놨다. 1992년 착공해 1999년 완공됐다. 단지 안엔 문의면 가호리 아득이마을 고인돌을 비롯한 선사유적과 옛 문의현 객사(客舍, 나그네들이 묵었던 숙소)인 문산관(文山館)이 이전·복원돼 있다.

또 강릉김씨 종가였던 문의 노현리 민가와 부용면 부강리 민가,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초가집인 낭성 관정리 민가들이 자리를 옮겨 한데 모였다. 이밖에 양반가옥과 주막집, 토담집, 대장간, 성곽 등이 재현돼 있고 문의지역 옛 비석들을 모아놓은 비석거리도 조성됐다.

문화유물전시관에선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한 아이를 만난다. ‘흥수아이’다. 1983년 문의면 두루봉동굴에서 석회석광산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던 김흥수 씨가 동굴을 살펴보다 사람 뼈를 발견했다. 키가 110∼120㎝ 정도인 어린 아이였다. 발굴조사 당시 흥수아이는 머리가 동쪽으로 향한 상태에서 석회암 바위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5살 정도로 추정되는 이 아이가 어쩌다 이곳에 이렇게 묻히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대에도 일정한 장례의식이 있었던 건 분명해졌다. 흥수아이 주검 위엔 고운 흙이 뿌려져 있었고 그 주변에 꽃을 뿌려놓은 흔적이 발견됐다. 이 꽃은 국화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 독수리바위 조망. 뿌연 시야가 아쉽다.

#. 대청호를 응시하는 독수리바위
문의문화재단지에서 선사시대 이후 이곳 사람들의 삶을 엿본 뒤 다시 양성산을 오른다. 이유는 단 하나. 더 넓은 대청호반을 가슴에 품기 위해서다. 목표는 독수리바위. 거리상으론 대략 1㎞를 가야 한다. 습도가 높아 발걸음이 다소 무겁지만 대청호 풍광에 대한 기대감이 힘을 준다.

▲독수리 바위

향긋한 숲내음은 그곳, 그 자리에 있어본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전유물이다. 30∼40분 정도 오르면 큰 바위 덩어리들이 산 능선에 우뚝 솟아 있다. 영락없는 독수리다. 날개를 편 채 지긋이 대청호를 바라보는 모양새다. 뭔가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은 그 기운에 의지하듯 돌탑을 쌓아놓았다.

독수리바위가 응시하는 곳, 그곳은 양성산 줄기와 구룡산 줄기가 태극문양에서 양과 음이 결합하듯 맞물린 신비로운 곳이다. 산줄기를 휘감아 도는 대청호 물길이 인상적이다. 양성산 줄기와 구룡산 줄기를 연결하는 문의대교도 한 눈에 들어온다. 안개 탓에 조망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산에 오른 보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산길은 독수리바위에서 보였던 양성산 줄기를 통해 나 있다. 곧장 내려가면 32번 국도(대청호반길)와 만나고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 나와 20구간을 마친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이승훈·이기준 기자

 

[20구간 이렇게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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