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연구진이 뇌 속 해마에서의 단백질 억제가 장기기억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1일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서울대 강봉균 교수와 기초과학연구원(IBS) 김빛내리 단장 연구팀이 장기기억을 형성하는 동안 일어나는 유전자 조절 현상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 10월 2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학습한 내용이 뇌에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기 위해선 유전자로부터 단백질이 생산되는 과정이 정밀하게 조절돼야 하는데 유전자 발현 조절은 DNA의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RNA(mRNA) 양을 조절하거나 mRNA로부터 단백질이 합성되는 ‘번역(translation)’ 과정을 제어해 이뤄진다.
그동안 서술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하부구조인 해마에서의 mRNA와 단백질 합성이 장기기억 형성에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기억이 형성되는 동안 유전자로부터 단백질 합성이 제어되는 메커니즘은 불분명했다.
연구팀은 장기기억을 형성할 수 있는 강한 학습을 한 실험용 쥐의 해마를 추출해 단백질 합성에 대해 조사했다. 이어 수천 개 이상 유전자의 번역 상태를 동시에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 해마의 단백질 합성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해마에서의 단백질 합성이 장기기억 형성 등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해마에서의 전체적인 단백질 합성 효율은 낮게 유지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또 강한 학습 직후 5~1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여러 특정 유전자들의 단백질 합성이 mRNA로부터 단백질이 합성되는 번역 단계에서 억제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실험 쥐에서 여러 특정 유전자 중 한 유전자(Nrsn1)의 발현량을 높였더니 장기기억을 잘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시 말해 장기기억을 형성할 때 Nrsn1과 같은 단백질이 ‘기억 억제자’ 역할을 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장기기억 형성 유전자 조절에 관한 이번 연구는 관련 연구의 데이터베이스로 활용될 수 있어 기억상실, 치매, 우울증, 불안장애 등 학습·기억과 관련된 뇌질환 치료 연구에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빛내리 단장은 “장기기억 형성에 단백질의 생성이 중요하지만 일부 단백질의 경우 오히려 그 생성이 억제돼야 한다는 것을 처음 규명했다”며 “기억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가 다양한 뇌질환 치료를 위해 중요한 만큼 관련 연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주경 기자 willowind@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