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이 시작 된지도 한주가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은 연말이 되면 새해에 세웠던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 점검해 보면서 목표를 달성했거나 근사치에 이른 것에 대해서는 만족해 한다. 작심삼일이 되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것이나 아예 시도도 못한 목표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면서 올해는 못했지만 새해에는 잘해보겠다고 다짐하며 새해를 준비한다. 반대로 12월은 참 분주한 달이기도 하다. 친목회 등 각종 모임에서는 송년회로 연일 정신없이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12월은 가는 해와 다가오는 해의 경계지점에 있는 전환점이자 모임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회력에서는 12월이 마감하는 달, 분주한 달이 아니라 한 해를 시작하는 출발의 달이며 이 땅에 정의, 평화, 생명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조용히 기다리는 대림절기로 기다림과 묵상의 달이기도 하다. 대림절이란 오다(Coming), 도달하다(Arrival)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헨리 나우웬이라는 영성가는 대림절이 갖는 의미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처음 오신 것을 기념하는 것, 이 세상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절기라고 했다. 이렇듯 12월은 한편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 모임이 많은 분주한 달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새로운 해가 시작된 첫 출발의 달, 예수를 기다리는 묵상의 달이다.

그런데 새해가 시작되었으면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출발해야지 생뚱맞게 조용히 묵상하면서 예수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새 출발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기에 정의, 평화, 생명의 왕으로 오셔서 새로운 시대를 여셨던 예수를 기다림으로 겉으로만 새롭게 출발할 것이 아니라 속까지도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닐까? 구약의 예언자 아모스가 선포한 말씀처럼 하나님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수를 기다리는 것이요, 이리와 양이 함께 뛰놀고 사자와 암소가 함께 뒹구는 평화의 세상, 공존의 세상, 차별이 없는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림절의 의미인 것이다.

그런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매주 산마루 서신이라는 제목으로 묵상 글을 보내시는 목사님으로부터 대림절 묵상이라는 한 편의 시를 메일로 받게 되었다.


처참히 죽으러 오는 아기를
고요히 기다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처참히 죽으러 오는 아기를
거룩히 기다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처참히 죽으러 오는 아기를
은혜라며 기다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이제는 오지 말라
더 이상은 오시지 말라
오시지 말라
제발!

시인은 매년 대림절만 되면 새 시대를 향한 간절한 열망으로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지만 막상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에는 예수가 없는 성탄절이 돼 버리고, 2000년 전 갈릴리 땅에서 해방을 선포하며 새 시대를 열었지만 결국 당시 기득권층으로부터 처참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를 기다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처참하게 죽기 위해 오시는 예수를 은혜라고 말하며 기다리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오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이번 대림절에는 희망으로 오시는 예수를 기다리지 말아야 하는 걸까? 정말 시인은 예수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시인도 나처럼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가득 차도록 오시는 예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예수가 새 시대를 열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향할 때, 끝까지 동참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예수를 배신했던 것처럼 매년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오시는 예수를 우리의 비겁함과 이기심으로 예수를 배신하는 것이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더 간절히 기다리지 못하고, 희년의 해방을 선포하지 못하고, 가나안의 희망을 나누지 못하고 샬롬의 평화를 나누지 못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지 못하는 삶을 하루라도 빨리 돌이키라는 말이다. 정의, 평화, 생명의 시대를 열기 위해 오시는 예수 앞에 무엇을 내 놓을 수 있는지 점검하라는 것이다.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위해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과 고백으로 주님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시인의 노래처럼 이번 대림절은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 앞에 평화의 삶, 생명의 삶, 정의의 삶, 나눔의 삶을 예물로 준비하는 대림절이 될 수 있기를 묵상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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