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전 노숙인 선언

지난 11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생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무연고시신을 해부용으로 제공하도록 한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약칭 시체해부법)이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헌재는 해당 법률이 비록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후 시체가 해부용으로 제공됨으로써 자신의 시체의 처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기에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장기나 인체조직의 경우 관련 법규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식, 채취될 수 없도록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시체해부법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해부용 시체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하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홈리스행동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지역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은 성명을 통해 헌재의 결정은 환영하지만 아직도 관련법들이 노숙인의 인권을 보호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차제에 관련법 개정을 통해 노숙인의 인권보호에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을 주문했다.
공동기획단은 시체해부법 제12조 1항을 보면 “인수자가 없는 시체가 발생했을 때에는 … 의학의 교육 또는 연구를 위해 시체를 제공할 것을 요청할 때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지난 1962년 '시체해부보존법' 제정 당시부터 존속된 것으로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의 의사를 불문하고 시체를 해부하도록 한 구시대적 유물이자 패륜적 독소조항으로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 국회에 해당 조항을 폐지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시체해부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는 이를 반영한 시체해부법을 신속히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번 헌재 판결을 계기로 법률 개정뿐만 아니라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제12조는 무연고 시신 등의 처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시체 인수를 거부한 사체의 경우는 시체처리 규정에 의해 처리되게 돼 있다. 말 그대로 무연고 사체는 처리 될 뿐, 고인을 위한 최소한의 장례절차조차 없으며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이동하는 이른바 직장(直葬)의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평소 함께 지낸 지인들마저도 고인을 애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무연고사망자 공고시점이 무연고사망자 화장 및 봉안이 완료된 시점인 무연고 시신을 처리한 때로 규정되어 있어 고인의 지인들조차 부고를 들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연고자가 있든 없든, 가난하든 그렇지 않든 존엄하게 살고 존엄하게 떠나는 일은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돌봐 줄 이 없다고 누군가의 사체가 제3자의 손에 넘겨져서는 안 되며, 가난하게 죽었다고 애도하고 위로받을 기회마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이번 헌재 결정은 이를 부정하는 제 법률들과 제도들을 즉각 개정하고 개편하는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전은 죽은 사람의 존엄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먼 것 같다. 올해 희망진료센터에서 파악한 것만 쪽방이나 거리에서 돌아가신 분이 28명이나 된다. 그중에는 사망한 지 한참이 지나서 발견된 경우도 여러 건 있다. 그중에 A(당시 43세·여성) 씨 혼자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중병을 앓고 있었지만 곁에서 간병을 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 끝내는 쪽방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했다. 거꾸로 그분이 거리에서 돌아가셨다면 사람들의 눈에라도 띄었겠지만 쪽방에서 쓸쓸히 홀로 돌아가셨기에 죽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그 외에도 상당수가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발견됐다.) 살아있을 때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지내다가 죽는 순간에도 혼자였고, 죽어서도 애도하는 사람 하나 없이 며칠씩 그대로 방치된 것이다. 도심 속의 외로운 섬처럼 죽는 순간에도 아무도 없이 쓸쓸히 홀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살아서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고 죽는 순간에도 천덕꾸러기가 돼버리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의료체계와 생활대책 그리고 최소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죽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되길 희망한다.
또한 올해 사망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연사라기보다는 질병에 의해 사망했다. 이들만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질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돈이나 공공의료체계가 없어 치료시기를 놓쳐 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희망을 갖는 것을 포기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다 끝내는 안타깝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매년 노숙인추모제를 통해 이런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면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타살이 없길 기도했다. 그러나 올해도 여전히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인해 고립된 채 죽어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에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 및 빈민운동단체를 중심으로 대전빈민운동네트워크를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대전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이 최소 인간다운 생활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선이 지켜지도록 함께 활동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대전시가 내년 1월까지 소득, 주거, 교육, 의료, 돌봄, 지역사회공동체 등 6개 분야 복지 기준선을 마련한다고 한다. 이는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에 있든지 대전시민이면 최소한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다는 의미일 게다. 노숙인도 대전시민이다. 노숙인에게도 대전시가 마련하고 있는 복지 기준선대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 되도록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노숙인에 대해 무관심과 낙인으로 일관해오는 사회를 향해 가난은 죄가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뿐이요,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노숙인은 위험한 존재, 범죄자로 규정해버리는 사회적 낙인을 멈추길 소망한다. 노숙인도 우리의 이웃이요, 대전시민이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