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가 태어나다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완연한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와 수를 놓고 있던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몸이 스멀거려 방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조희는 양지바른 뜰로 나와 새싹이 돋은 그곳을 오가며 상춘을 즐겼다. 물오른 나뭇가지마다 파릇한 기운이 하루가 다르게 감돌았다. 때로 새들이 날아와 그런 조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랑을 나누다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조희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뒤틀려 잠시도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살을 꼬집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사내아이가 뒤채로 달려들어 왔다. 나이가 열댓 살은 되어 보이는 미소년이었다. 얼른 보아도 외모가 보송보송한 것이 세상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런 사내아이였다.

그 아이는 안방마님이 조희를 찾는다는 전갈을 전하고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조희는 전갈을 받고 알겠노라 대답하곤 그 아이에게 누구의 자식이냐, 거처가 어디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린 사내는 겸연쩍게 볼을 붉히며 소상하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조희는 그 아이의 손을 넌지시 잡아당기며 귀에다 대고 말했다.

“할 말이 있으니 오늘 밤에 잠시 들르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그러자 사내아이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 안채 쪽으로 뛰어나갔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모습이 싱그러웠다.

그날 늦은 밤이었다. 정적만이 감도는 어둠 속에 안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사내아이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마님 분부대로 왔사온데요.”

사내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조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외실 문을 열고 나직하게 그를 불러들였다.

“내 너에게 긴히 할 얘기가 있어 불렀느니라. 잠시 안으로 들어 오거라.”

사내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부르르 떨며 머뭇거렸다.

“안으로 들어오래도.”

조희는 떨고 있던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외실로 그를 끌어들였다.

사내아이는 아씨 마님의 분부였으므로 거역할 수 없었다. 분명 하인의 몸으로 혼자 살고 있는 아씨의 방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조희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얘야. 두려워하지 마라. 내 너를 어찌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조희는 사내아이의 손을 잡아 넌지시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아이는 바들바들 떨며 오금을 펴지 못했다. 손끝에 뭉클한 감지가 느껴지자 아이는 사시나무처럼 바르르 떨었다.

“마음을 편히 하래도.”

조희는 떨고 있던 아이에게 다가앉으며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사내아이의 몸에서 쿰쿰한 땀 냄새가 났지만 사내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조희의 품에 안긴 아이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생땀을 흘리며 경직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얘야. 마음을 편히 가져라. 네가 이토록 떨고 있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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