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8일은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3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광주항쟁에 대해 네이버 백과사전에 보니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10·26사태로 붕괴되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12·12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려고 하자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신군부 집권 저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집회와 시위가 광범위하게 전개됐다. 광주에서도 마찬가지로 5월 초부터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대규모 가두 정치집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족민주화성회로 불리던 이러한 집회와 시위는 5월 16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러자 신군부는 5월 17일 오후 7시를 기해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18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하는 한편 대학생과 재야인사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5월 18일, 전남대에 주둔한 계엄군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자 학생들은 도심으로 진출하여 시민들에게 계엄군의 만행을 알렸다. 제7공수여단에 이어 추가로 파병된 제11공수여단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시민에게도 폭력을 휘둘렀고, 무차별적으로 연행하였다. 이에 시민과 학생들은 계엄군의 폭력에 저항했다. 그러자 계엄군은 비무장 상태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시작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계엄군의 만행을 널리 알리고, 무력에 저항하기 위해 전남 지역으로 진출하여 무기를 획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뿐만 아니라 전남 일원으로 확대됐다. 무기를 획득한 시민들은 이른바 시민군이 돼 마침내 5월 21일 계엄군을 후퇴시킴으로써 27일까지 민중자치가 실현됐다. 이 기간 시민군은 광주의 치안과 행정업무를 담당했으며, 다수가 도청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계엄군이 철수한 광주는 5·18수습대책위원회에서 시민학생민주투쟁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해가면서 죽음으로 확보한 민주주의 성과를 지속시키고자 했다. 이들은 5월 26일까지 매일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민주주의의 사수를 위해 노력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기간은 시민들이 각자의 생명과 동료 시위대 그리고 광주시민들의 생명과 완전히 동일시했던 절대공동체가 형성되었던 시기였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함으로써 5·18광주민중항쟁은 종결됐다.

다행히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및 기념사업이 이뤄졌고, 지난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가해자 다수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졌다. 1997년에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광주항쟁의 역사는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아직도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고, 학살의 주범들은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지난 17일 MBN 뉴스8은 신동아의 보도를 인용해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실세였던 전두환 씨가 발포명령을 부인했다고 전했다. 기사에 의하면 그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보안사령관은 정보·수사 책임자”라면서 “보안사령관이 청와대를 꺾고 이렇게는 절대 못 해”라고 잘라 말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광주항쟁의 현주소다.

어떤 방법이든 권력을 잡기만 하면 정의가 되어버리는 역사. 그렇다 보니 일제 식민지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면서 친일이 아닌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애국자라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민족을 일제에 팔아넘기고 나서도 어쩔 수 없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친일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바로 세우자고 하면 종북이 되고,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는 사람이 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불순세력이 돼버리는 사회에서 5·18 광주항쟁이 국가기념일이 됐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청산되지 않은 역사로 남아 있는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는 것에서부터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가야만 광주민중항쟁도 제대로 청산될 수 있을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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