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를 접수하다⑦

“왕후, 진이 쳐들어온다면 싸워야지 않겠소. 그렇다고 과인을 능멸한 자를 그냥 살려 보내란 말이오?”

회왕이 격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그래도 그를 놓아주고 진과 화해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옵니다. 이 일은 분노로 해결할 일이 아닌 줄 아옵니다.”

왕후는 끊임없이 회왕을 설득했다. 하지만 회왕의 분노는 쉽게 누그러들지 않았다.

몇 날이 지났다. 장의의 압송행렬이 궁성으로 들어올 즈음이었다. 왕후 정수는 회왕을 찾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대왕께서 그토록 고집을 피우신다면 태자와 저는 강남으로 건너가 진으로부터 죽음을 면하는 것이 좋을 듯싶사옵니다. 저와 태자를 죽이기 위해 벌써 자객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있사옵니다. 두려워서 도저히 살 수가 없사옵나이다.”

왕후는 발끈하며 침전을 나갔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회왕은 속이 들끓었다. 즉시 죽이고 싶지만 왕후가 그토록 애원을 하니 어쩌겠는가. 회왕은 며칠을 숙고했지만 살려 보내는 것 외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회왕은 도리어 마음을 돌려 장의를 극진히 대접하고 약속한 대로 검중지역의 땅을 진나라에 주어 진나라로 돌려보냈다. 울며 겨자를 먹어야 했다.

장의가 길을 나선지 수일이 지났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나가있던 굴원이 돌아왔다. 그는 이런 사실을 알고 회왕에게 서둘러 나아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장의를 잡아 참형에 처해야 하옵나이다. 대왕마마. 제나라와 우리의 동맹이 파기된 것도 그놈의 간계였나이다. 그 점을 아는데 어찌 그자를 살려 보내신단 말이옵나이까?”

“그럼 장의가 제나라와 동맹을 파기시키기 위해 그런 간계를 부렸단 말이냐?”

“그러하옵나이다. 대왕마마. 지금이라도 즉시 군사를 보내 그자를 잡아 죽이도록 하시옵소서.”

회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즉시 장의를 뒤쫓아 그를 참하도록 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이때는 벌써 장의가 국경을 넘은 뒤였다. 그는 느긋한 마음으로 함양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진은 검중지역을 얻고 제나라와 초나라의 동맹을 와해시켜 초나라를 치는 데 초석을 다졌다.

진왕의 조부 소양왕 때는 잠시 초나라와 화해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지 않아 진의 공격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소양왕은 잦은 교전으로 초나라의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을 알고 초회왕을 사로잡을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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