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시간여행 그땐 그랬지’ 화면 캡처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가 26일 최순실이 있는 서울구치소에서 진행되면서 지난 1997년 한보그룹 청문회 이후 근 20년만에 교도소 청문회가 벌어졌다.

이날 특조위원회는 최순실을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을 출석시키려 했지만 이들이 모두 거부하면서 수감동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 상태다.

특위는 또 앞선 두 차례의 청문회를 포함해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들 핵심증인 3명이 청문회에 불출석한 데 대해 국회 모욕죄로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이날 교도소 청문회가 벌어 지기 앞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SNS를 통해 "1982년 장영자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직접 들어가 조사한 과거가 있다"고 밝혀 교도소 청문회는 장영자가 원조인 것으로 밝혀져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장영자는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스캔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희대의 금융사기를 저지르고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시인하지 않는 최순실과 같은 태도를 보여 전 국민을 분노케 했다. 장영자는 1944년 전남 목포 생으로 숙명여대 재학 당시 '메이퀸'으로 뽑힐 정도로 뛰어난 미모에 달변가로 소문이 났다. 그러나 고교 시절에는 담임선생님에게 규범의식 희박, 성적 불량 등의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영자는 고종 사촌인 차용애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이며 형부의 형의 딸인 이순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정계 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등 가계도를 출세가도에 적극 이용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중앙정보부 차장 이철희와 결혼하면서 화제가 됐다. 이때 장영자는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었다. 이철희는 장영자 앞에 권총 한 자루를 꺼내 놓고 결혼 아니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극단적인 프로포즈를 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이철희와 결혼한 장영자는 이후부터 거칠 것 없는 인맥을 바탕으로 국내 사채 시장을 좌지우지했다. 1982년 5월 4일 장영자는 이철희가 어음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사기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나라를 뒤흔들어 놨다.

장영자는 이철희를 이용해 화려한 언변과 미모를 무기로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에 상대로 자금지원을 해주겠다고 유혹, 그 대가로 2배에서 최고 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고서 이를 사채시장에 유통시켰다.

어음과 담보조로 받은 견질어음을 시중에서 할인해 다시 굴리는 수법으로 6400억 원의 어음을 시중에 유통시켜 1400여억 원을 벌어들였다. 장영자는 검찰 수사에서 '경제는 유통이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담대함까지 보였다. 사건이 밝혀진 뒤 어음을 발행한 기업들은 부도를 내고 속속 무너져 내렸다.

김영삼 정부 들어선 본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시행해 장영자 사건이 금융실명제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장영자와 이철희를 위시로 은행장 2명과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 당시 재벌가들 32명이 구속되면서 수사가 마무리됐다.

장영자와 이철희는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고, 이철희가 먼저 가석방된 뒤 장영자는 10년 뒤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장영자는 1994년 다시 100억 원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구속됐다. 2001년 5월에도 220억 원대의 구권화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돼 세 번째로 복역했다.

당시 장영자 사기사건은 검찰 수사에서 약 6400억 원 정도의 규모로 밝혀졌으나 밝혀지지 않은 액수까지 포함하면 7천억 원대를 훌쩍 넘겼을 것이란 추정이다. 1982년 기준으로 샐러리맨 연봉이 500만 원 수준에 월급은 40만 원 정도인 것을 감안했을 때 현재 기준으로 7조 원대에 다다르는 천문학적 사기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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