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연 부장판사가 영장 기각 결정을 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의연 부장판사, 이재용 영장 기각 … 근거는 "법적 사유 불충분"

재벌 총수에 대한 관용주의로 해석할 수 있을까.

전 국민의 눈이 쏠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19일 기각됐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4시 55분 새벽 미명에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뇌물 범죄 요건인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를 봤을 때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어렵다"며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 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 등 현재까지 수사내용과 진행경과 등은 구속 사유로 미흡하다"고 기각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설명했다.

조의연 부장판사의 이같은 판결에 따라 박영수 특검팀은 난감하게 됐다. 최순실 게이트 재벌 총수의 정점에 달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시작으로 탄핵 정국의 그림을 어느 정도 매조지하려는 구상안이 틀어져버린 것이다.

특검팀은 이재용 부회장을 소환하고 21시간의 강도 높은 조사를 거친 끝에 뇌물공여와 횡령, 위증 등의 혐의에 확신을 가지고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특검팀은 여러 증인들의 목소리와 증거물 등을 무기로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2015년 벌어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성사시킨 것으로 봤다. 이는 삼성그룹의 승계와 매우 밀접한 관련히 있는 중대사안이었다. 합병안이 계획대로 잘 마무리되자 청탁의 대가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430억 원대의 사례비를 송금했다.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 측은 18일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삼성의 이러한 뒷거래는 자의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등 권력의 힘에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가 가진 이미지와 위상을 고려했을 때 이재용 부회장이 도망갈 이유가 없고 국회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도 적극 참여했다며 사전구속영장 청구의 부당함을 토로했다.

이날 눈길을 끄는 발언으로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고용노동부 장관 초청 '30대 그룹 CEO 간담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은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무책임한 처사라며 돌직구를 던진 것이다.

김영배 부회장은 "안 주면 안 줬다고 패고, 주면 줬다고 팬다"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겠는가. 기업이 중간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기업은 단순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검팀은 조의연 부장판사의 기각 결정으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하겠단 입장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의혹을 받고 있는 여타 재벌들의 수사도 박차를 가하겠단 청사진이었으나 장애물에 막히면서 다른 비상구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조의연 부장판사가 새벽 늦게까지 판단을 한 것은 판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중대판단이라 신중을 기했다는 분석이다. 피의자의 구속 여부의 결정에 대해 법적인 이유만을 근거로 든다는 '원칙주의자'란 평판을 듣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영장 전담판사 3명 중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 대부분을 심문해 지난달부터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시작으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등 '블랙리스트'의 핵심 인물들의 영장 심사를 맡아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제외하고 모두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에서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차은택 감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도 굵직한 사건을 도맡아 언론에 이름이 자주 노출됐다. 지난해 9월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으면서 화제가 됐다. 검찰은 당시 신동빈 회장을 1700억 원대 횡령·배임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조의연 부장판사는 신동빈 회장의 영장을 기각하고 "혐의에 대한 소견이 필요한 상태로 법리적인 부분을 따져볼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그해 7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신영자 이사장에게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에게 35억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에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6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영국계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존리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에 의한 피의자의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 정도와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 볼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해 8월에는 연예인 박유천의 성폭행 사건의 영장실질심사도 맡았다. 경찰은 박유천을 첫 번째로 고소했던 여성 A 씨와 그녀의 사촌 오빠를 무고와 공갈혐의로 구속한 상태였고 조의연 부장판사는 이들에 대해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리기사와 행인을 집단 폭행한 혐의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와 피의자들의 주거, 생활환경 등에 비춰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렸다"며 영장 기각사유를 설명했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1966년 충남 부여 생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모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4기며 군 법무관을 거쳐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부터 자리를 옮겨와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전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날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고위 임원진들은 서초동 사옥에 밤샘 대기를 하다가 기각 결정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재용 부회장이 법원 결정을 기다리던 서울구치소에서 같이 밤을 지새운 일부 직원들은 차분한 표정 속에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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