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 아들 통한의 사부곡
"6·25때 군·경이 학살한 민간인…과거사특별법 국회 통과 시급"

아버지는 어린 시절 형무소에서 본 게 전부였다. 노년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알게 됐고 이제 산수(傘壽)가 다 된 나이인 그는 67년 전 대전 산내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진실을 세상 사람들이 잊게 될 것만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26일 김종현(80·사진)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이사장을 만났다.

김 이사장의 아버지는 해방과 함께 일본에서 귀국했다. 그러던 중 고향 신탄진에서 발생한 지서 습격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돼 대전형무소에서 재판을 받았고 미결수로 복역 중 전쟁이 터지며 처형됐다. 당시 13살의 어린 나이였던 그는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얘기를 믿고 단 한 번도 부친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엔 빨갱이다 뭐다 연좌제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니 원망도 많았죠. 생각해보면 조부모님과 어머님 살아계실 때 아버지에 대한 얘기 좀 여쭤볼 걸 지금은 그게 참 후회스러워요.”

군사정권의 명(命)이 다하고 문민시대가 열리자 과거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규명하는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김 이사장의 인생도 반전을 맞았다. 제주 4·3, 거창과 노근리 학살 사건 등 그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역사의 진실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고 노무현정부가 이 모두를 하나로 묶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제정하며 대전·충청지역의 민간인 학살도 진상 규명 작업에 착수하게 되면서부터다.

진상 규명의 결과는 참혹 그 자체였다. 대전 산내골에선 세 차례에 걸쳐 당시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 관련자 등 7000여 명의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처참한 희생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전쟁 전후 남한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중 최대 규모다. 이 때 김 이사장의 아버지 고(故) 김명기 옹의 억울한 희생 뒤에 감춰진 진실도 주변 증언 덕분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말 이럴 수가 있나 했죠.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국가인데 죄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가 빨갱이 누명 씌워 억울하게 돌아가시게 만들고….”

김 이사장은 산내 학살 사건의 진상은 규명됐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은 많다고 말한다. 사건의 단편적인 정황들이 확인됐을 뿐 땅 속에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고대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생각엔 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가 100만에 달함에도 지금껏 누명을 벗은 이는 불과 1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진상 규명 작업은 이제 시작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그래서인지 김 회장은 두 번째 과거사진상규명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누구보다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게 멈춰버렸어요. 지난번 특별법은 조사권에 한계가 있던 게 아쉬웠는데 이번엔 그런 부분들을 조금 더 강화한 법률이 된다면 가려져 있던 많은 진실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을 기리는 열여덟 번 째 합동위령제는 27일 오후 2시부터 동구 산내 골령골 추모공원에서 열린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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