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역자 홍은주/ 문학동네

'1Q84'로 열풍을 일으킨 작가 하루키가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로 돌아왔다. 지난 2월 일본에서 출간 당시 130만부 제작 발행으로 화제가 됐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한국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30대 초상화가인 주인공은 아내에게서 갑작스런 이혼 통보를 받고 집을 나온다. 그리고는 친구 아버지인 일본화가 아마다 토모히코의 산속 별장에서 지낸다. 새벽에 기이한 종소리가 울리는가 하면 다락방에서는 아마다의 그로테스크한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가 발견된다. 한편, 이웃에 사는 백발의 신사 멘시키는 소녀 마리에의 초상화를 의뢰하고 주인공은 두 사람의 관계와 악몽 같은 그림을 둘러싼 비밀을 탐색하면서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마주한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 1권 p.94~95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 1권 p.340

 

소설의 위 대목들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교묘히 자기존재를 줄타기하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을 이야기로 형상화한다.

아내와의 이혼, 구덩이와 벽, 불가사의한 존재와의 만남 등 기이한 경험을 통해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는 판타지적 요소들로 미지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작가는 불안한 인간의 내면을 조명하면서 "이 세계에 사실이나 확실한 건 없지만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말하며 사실의 증명보다 믿음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특징들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지금까지 구축해온 작품세계를 농축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정리=허정아 기자 admi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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