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긴 밤을 보냈을 당신에게. 지난밤은 당신에게 길고 긴, 깨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210만 지역주민들의 삶을 책임진 도지사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당신이 추구해온 삶의 가치와 신뢰, 기대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으니 잠인들 청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 역시 참담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난 건 대전 선화동 옛 청사에서였습니다. 스스로 ‘폐족’(廢族)이라 칭하던 당신은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충남도지사로 화려하게 부활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첫인상은 부드러우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댄디(dandy)한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당신의 거침없는 행보는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고 2012년 말에는 도청 이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내포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뿐입니까. 당신은 농어촌·농어업·농어업인을 한데 묶은 ‘3농혁신’의 기치 아래 행복농정을 내세웠고 ‘인권’의 개념을 도정 곳곳에 전파하고 인권도정을 힘 있게 추진했습니다. 당신이 도민의 응원 속에 재선(再選)지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일 겁니다.
당신의 꿈은 크고 높았습니다. 충남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당신을 가두기엔 아깝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각계각층의 지지는 당신을 19대 대선주자로 밀어 올렸습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2위로 고배를 마셨지만 젊은 당신에겐 ‘대권잠룡’ , ‘유력대권주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혁명가적 기질을 바탕으로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정치에 입문해선 2002년 노무현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은 당신의 역경과 고난의 히스토리와 친노 폐족에서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일약(一躍)한 당신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로 우뚝 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매력적인 전기(傳記)는 여기서 그만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묻고 싶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중시한 당신입니다. 당신의 수행비서가 한 방송을 통해 폭로한 성폭행 의혹을 보면 그 짓은 ‘스위스와 러시아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지난해 6월부터 8개월 동안 4차례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당신은 지난달 미투운동이 한참 사회적인 이슈가 된 상황에서 상처가 됐다는 걸 알게 됐고 미안하다고도 했지만 그날까지도 성폭행을 했다는 게 그 비서의 주장입니다. 당신의 ‘표정 하나하나에 맞춰야 하는 수행비서로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약자를 상대로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모욕을 안겨주는 명백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야누스 같은 당신의 이중성에 여론이 들끓고 힐난이 쏟아지는 마당에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겨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어리석은 행동에 용서를 구하고 지사직을 내려놓으며 정치활동도 중단한다고 했습니다. 이걸로 됐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당신의 사표(사임통지서)는 바로 결재돼 도의회에 넘어갔으니 이제 전(前) 지사 신분입니다. 도정은 행정부지사 권한대행체제로 전환됐습니다. 한때 충남도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은 전 지사로서 마땅히 도민 앞으로 걸어 나와 성폭행 의혹을 설명하고 석고대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희정 전 충남지사, 당신은 현재의 ‘행방불명’ 상태를 스스로 해제하고 피해자와 도민들에게 사과하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마지막 예의일 것입니다.
내포=문승현 기자 bear@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