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석 수필가

 

북풍(北風)에 휘말려 ‘내 고장 일꾼’을 뽑는 6·13 지방선거 결과가 집권여당 몫으로 싹쓸이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일당이 독점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 정신을 희석시킬 위험이 된다.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사실을 집권여당이 당세 확장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지방선거의 본질적 가치가 왜곡됐기 때문이다. 내 고장 일꾼을 자처하고 나섰던 여당 소속 후보자들마다 자기가 마치 ‘통일’과 ‘평화’의 일꾼인 것처럼 표심들을 유혹했고, ‘평화통일’을 열망해온 표심들 역시 막연한 기대심리에 들떠 지방선거를 마치 정당별 인기투표 하듯 여당에 몰표를 던져 편향된 싹쓸이 현상을 낳고 말았다.

이념적 적대관계와 연결된 대북(對北)정책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때 내걸려야 할 이슈다. 지방자치 일꾼들의 사명은 명실공히 자기 고장의 발전이다. 광역·기초단체별로 지방마다 각기 다른 자치 조건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 후보들의 공약도 지역별 특색에 부응해야 마당하다. 또 유권자들에게도 어느 후보가 지역의 일꾼으로서 진실한 공약을 제시했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 국가통치권자의 남북정상회담 업적을 지방선거 이슈로 이용해 표몰이 선동을 한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 본연의 의미를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결국 중앙정치의 위상까지 훼손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결과는 성급하게 예단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방자치 일꾼들의 표심 현혹에 이용돼서도 안 된다. 이벤트적 형식을 넘어 회담 내용이나 성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북미정상회담도 그렇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회담 내용 중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라는 핵심 내용이 빠졌다는 비판이 드세다. 또 그동안 여러 차례 국제간의 약속을 위반해온 북한의 불신적 행태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에서 시발(始發)된 북미정상회담까지 매개한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적 의미는 부정할 수 없는 성과다.

더구나 전 세계가 북한의 핵 위협을 주목하던 시기에 ‘한반도 비핵화’ 및 ‘종전(終戰) 선언’을 위한 남북 정상과 미북 정상의 회담이 연쇄적으로 개최된 것은 이념적 적대관계로 양분된 한반도의 현실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다. 물론 ‘보여주기식 정치이벤트’라고 폄하하는 논객들도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지난 13일 지방선거를 치렀다. 국방·외교 관련 대북정책은 어디까지나 국정통치권력과, 국가정책을 심의·결정하는 국회의 몫이다. 막연히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특정 정당에서 당세 확장을 위한 민심 선동용으로 지방선거에 이용한 것은 왜곡이고 무리다. 통일을 갈망하는 국민 심리를 현혹한 정치적 기만술로 비칠 수도 있다.

지방선거 후보가 되기까지 공천이란 관문 때문에 일부는 중앙당의 정강정책이나 당리당략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와 중앙정치는 엄연히 영역이 다르다. 모르고 선동정치에 부화뇌동한 지방선거 후보들이나 분별없이 휩쓸려 넘어간 표심들은 각성하고 반성해야 한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된 것은 1991년이다. 어언 약관(弱冠)의 세월을 넘어 이립(而立)의 경지에 이른다. 여야 불문하고 지방선거 후보들은 스스로 자기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은 드러나고 허상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북풍으로 싹쓸이 당선된 여당의 지방자치 일꾼들은 모두가 유능한가? 4년 뒤면 알게 된다. 일꾼으로 당선된 후보들이나 후보를 선택한 표심들이나 함께 반성해야 한다. 또 지방자치 일꾼들이 국회의원들을 뛰어넘어 남발한 장밋빛 공약은 모두 실천해낼 수 있나? 말잔치 공약에 현혹돼 당위성을 잃은 표심을 행사할 때 지방자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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