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섭씨 33도 이상의 기온이 2일 이상 지속될 경우 폭염 주의보를, 섭씨 35도 이상의 기온이 2일 이상 지속되면 폭염 경보를 내린다. 이러한 폭염특보 제도를 처음 시행한 것은 2008년으로 이제 겨우 10년이 되었을 뿐이다. 제도 시행 10년 만에 우리는 역대 최악의 폭염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기록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니까,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 할 폭염의 강도는 미리 가늠할 길이 없다.

언론에 따르면 지금까지 기록하고 경험한 최악의 폭염은 1994년 여름이라고 한다. 온열질환 사망자가 속출하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계란후라이가 가능할 정도였으며, 열대야도 관측 이래 최대를 기록하였다. 실제 기록으로 보더라도 1994년 7월 서울 지역은 섭씨 33도를 넘어선 날이 18일(올해 16일), 섭씨 35도를 넘어선 날이 10일(올해 9일)이고, 하루 최고기온은 섭씨 38.4도(올해 38.3도)였으니 지금 봐도 놀랍다. 그러나 올해 8월 들어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이 폭염은 무난히 1994년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1994년의 폭염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망각 속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폭염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한다. 과거에는 겨울 추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철저히 대비한 반면 여름 더위에 대해서는 그저 견디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제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버티기는 힘든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 에어컨은 사치품이었다면 오늘날 에어컨은 생활 필수품이 되었다.

폭염과 더불어 70%를 넘나드는 높은 한반도의 습도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피해도 키운다. 다른 자연재해와 견줄 때 폭염이 더욱 위험한 것은 사람이나 동식물에게만 선택적으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태풍이나 호우 같은 자연재해는 인명 피해 말고도 산사태, 홍수와 같이 그 피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지만 폭염은 그렇지 않다. 폭염특보 제도를 느지막히 시행한 것도 상대적으로 더위에 대한 위험 인식이 낮았기 때문이리라.

요즘과 같이 강한 폭염 속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경이롭다. 폭염에 타들어가지 않고 힘겹게 버티는 들판의 농작물들, 길가에 선 가로수와 꽃들, 그 사이를 누비는 새와 곤충들까지, 그 무엇이라도 폭염이 어찌 고통스럽지 않으랴. 세상을 태우고 녹이는 폭염의 위력 앞에 속은 타들어갈 지라도 겉모습은 참으로 의연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조차 무심히 창 밖으로 내다볼 때면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들판으로, 공사장으로, 고통스러운 길을 꾸역꾸역 간다. 먹고 살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간다. 하루에 서너 번씩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농사일을 하고, 폭염 아래 온 몸을 던져 일한다. 자본주의와 폭염이 손을 잡고 사람들의 죽음을 부른다. 그렇게, 담배밭에서 일하던 이주 노동자가 죽고, 건설공사장에서 일하던 젊은 이주 노동자가 죽었다.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들이다. 홀로 사는 노인, 이주 노동자, 도시 빈민들에게 폭염은 가혹한 존재다. 최근 서울에서 죽은 3명 중에 2명은 극빈층이라고 한다. 일정 이상의 폭염이면 외부에서의 작업을 중단시켜야 하고, 빈민층에게 난방을 지원하는 것처럼 냉방도 지원해야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한파와 폭설, 폭염과 열대야 등은 앞으로 더욱 무섭게 우리를 덮칠 것이다. 그것을 초래한 인류가 마땅히 전지구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해결하기 위해 온힘을 쏟아야 한다. 그 전에, 폭염에 지친 택배 기사들을 위해 아이스박스와 편지를 준비하는 어느 아파트 입주자 대표처럼, 함께 사는 세상부터 만들면 좋겠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서로 더위를 잊게 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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