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풍수를 통해 국가의 도읍을 정했다. 수도가 될 수 있는 명당이 세 곳이 있으니 송악산과 북한산, 그리고 계룡산이다. 송악산과 북한산은 왕조의 시대에 맞는 도읍이고 계룡산은 왕조를 배격하는 지세로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등 외면을 당해왔다. 송악산과 북한산이 고려와 조선의 시대를 열었으나 국가의 주인이 왕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인 계룡산시대를 갈망하기도 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 의해 계룡산 아래 신도안에 도읍을 준비했지만 실패했고 조선 중기 이후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백성의 삶이 고달픈 시기가 되면서 더욱 더 새로운 시대인 계룡산 시대를 찾았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찾았던 계룡산 시대는 과연 언제 올까?

풍수로 본 대전은 국민이 주인인 시대의 수도(首都)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당할 지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대전은 음양오행의 지세를 완벽하게 갖춘 도시로 오행의 순환 주기에 따라 발달되고 있으며 지세의 특성에 따라 유성구의 북부지역은 교육과 과학이 적합하다. 충남대와 KAIST를 포함한 교육기관과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한 곳으로 금병산이 주산(主山)이 된다.

금병산은 대전시 전역으로 보면 북쪽에 위치하며 수(水)의 기운으로 지혜와 완성의 자리로 오행의 원리에 의하면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계룡산의 지세에 의하면 동쪽에 위치하며 목(木)의 기운으로 시작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금병산이 위치한 유성구가 대전시의 늦깎이로 발전되지만 백성이 주인인 계룡산 시대에서는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조선의 시대가 막을 내릴 때 충남 공주의 작은 시골인 한밭리에 새로운 문명과 함께 대전역이 생겨났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면서 대전은 150만 광역시로 발전했고 나아가 행정수도의 역할을 하게 될 세종시가 출현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계룡산 시대는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시작이 됐고 이제부터는 모든 국민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시대적 사명을 이룩할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대전과 세종을 잇는 가교 역할로서 비단병풍처럼 12개의 봉우리가 형성된 곳이 금병산이다. 대전의 북쪽, 세종의 남쪽에 위치하며 그리 높지 않는 야트막한 야산이다. 금병산은 계룡산의 중심맥에서 흘러나와 서쪽인 반석동에서 동쪽인 대덕테크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에 반해 금강물은 신탄진에서 공주 쪽인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금병산을 향해 물이 감아 돌아가므로 산과 물이 교차하면서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을 이루어 명당이 만들었다. 실로 한반도의 최고 명산인 계룡산이 숨겨 놓은 최고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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