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경술국치 108주년인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에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개관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를 포함한 자료 7만여 점과 5만여 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가운데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아카이브로 구축·관리된다.
2011년 2월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8년여 만에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전시와 교육을 통해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담았다. 그리고 항일 투쟁의 역사는 물론 식민 지배에 따른 일제 잔재와 분단 독재체제의 폐해,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거사 청산운동의 과정도 전달한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총 4부로 구성됐으며, 향후 소장 자료를 활용해 전시는 물론 교육교재도 개발한다. 시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문화강좌를 개설하고 답사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송기인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재직 2년간 급여로 받은 2억 원 전액을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건립이 추진됐다. 개관을 앞두고는 4500여 명의 발기인을 비롯해 1만여 명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 5000만 원의 기금이 조성됐다.
이밖에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또한 건립운동에 동참했고,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은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결성해 1억 원이 넘는 기금을 모았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의 역사적 의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자발적으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독립운동 관련 학계의 도움을 받아 민간 차원에서 건립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30~40년간 평화와 반전, 조선인 차별철폐운동, 강제동원 진상규명연대운동을 해 온 800명 정도가 1억 원 이상의 기금을 민족문제연구소로 보내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또한 1만 명이 넘는 애국시민들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개관했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단순한 자료 전시만 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역사교육공간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인 고(故) 임종국(林鍾國, 1929~1989)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아 친일 인사들과 식민사학자들의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애국시민들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고 개관하는 데 성공해 앞으로 친일연구를 보다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진행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친일연구의 개척자인 임종국 선생은 1929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한 시인·비평가·재야사학자로 1956년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서울과 천안에서 일제침략사와 친일파 연구에 천착해 ‘친일문학론’(1966), ‘흘러간 성좌(星座)’(1966), ‘일제침략과 친일파’(1983), ‘밤의 일제침략사’(1984), ‘일제하의 사상 탄압’(1985), ‘친일문학 작품선집’(1986), ‘친일 논설집’(1987)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그는 부친 임문호의 친일 행적까지 낱낱이 밝히고 공개해 학자의 양심을 지킴으로써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국가가 할 일을 대신했다는 점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보다 더 많이 공헌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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