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웅순의 시조한담] 정광천의 ‘술회가’, ‘병중술회가’
  • 금강일보
  • 승인 2018.09.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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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 명예교수
신웅순 교수

정광천(1553년, 명종 8년~1594년, 선조 27년)은 임란(壬亂, 1592~1598년) 때의 의병장이다. 호는 낙애(洛涯)로 한강 정구의 문하생인 정사철의 아들이다. 부친 정사철은 대구 유림의 최고 지도자로 임란이 일어나자 의병활동을 하다 병으로 그 이듬해 졸했다.

정광천은 아버지를 모시고 피난생활을 하던 중 ‘술회가(述懷歌)’ 6수와 ‘병중술회가(病中述懷歌)’ 3수의 시조를 지었다. ‘낙애일기’에 실려 있는 이 두 노래는 나라와 부친을 걱정하는 깊은 충정이 서려 있다. 그 중 ‘술회가’는 1592년 11월 15일, ‘병중술회가’는 1592년 12월 20일에 지었다.

설울사 설울시고 민망함이 그지없다.
병진(兵塵)이 막막하니 갈 길이 아득하다.
어느제 수복고국(收復故國)하여 군부(君父) 편케 하려뇨.

‘술회가’의 둘째 수다. 병진은 전쟁의 먼지로 임진왜란을, 수복고국은 나라를 되찾는 것을, 군부는 임금과 아버지를 말한다. 서럽고도 설운지고 민망함이 끝이 없다. 전쟁터가 어지러워 갈 길이 아득하다. 어느 때 나라를 되찾아 임금과 부모를 편하게 할까.

그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은 문집 ‘낙애문집’의 의소(擬疏)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의소는 임진왜란으로 위기에 처한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수년간의 병란으로 피폐된 지금 실로 두려운 것은 외적이 아니라 민심의 이반(離反)이다’라고 말한 그는 우리 군대와 명나라 원군의 수탈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의 실정을 지적했다. 국가에서는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힘써 국가의 기강을 확립할 것과 또한 인재를 모아 왜적을 물리쳐야 함을 역설했다.

내 뜻지 우졸(迂拙)하야 아무대도 맛지 아니하니
공명(功名)에도 우활(迂闊)하고 영산(營産)에도 우활(迂闊)하여
다만 혼자 사생궁천간(死生窮賤間) 봉친종로(奉親終老)호려 하노라

‘병중술회가’의 첫 수다.

우졸은 어리석고 못난 것을, 우활은 못 생긴 것을, 영산은 재산을 경영하는 일을 말한다. 사생궁천간은 살고 죽고 궁하고 천하든 간을, 봉친종로는 죽을 때까지 어버이를 봉양함을 뜻한다.

내 뜻이 어리석어 어디에도 맞지 않아 공명에도 뜻이 없고 재산에도 관심 없어 다만 혼자 죽든 살든 어렵든 천하든 늙도록 부모를 봉양하려 하노라.

그의 시비가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달구벌대로 126길 58-8 금암서당 뒤편에 세워져 있다. 정사철, 정광천의 유택이 있는 정씨 문중 묘역이다. 금암서당과 문중 묘역 중간 지점에는 ‘임하 선생 낙애 선생 양 임란 창의비’ 등 기념 빗돌들이 서 있다.

요새 갑질 논쟁으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갑질을 저지르는 이들이 이런 옛 시조 한 수를 읽어나 볼까.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참 궁금하다. 염치를 알았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기다려 주는 시간은 어디에든 없다. 지금이 바로 행동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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