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웅순의 시조한담] 나위소의 ‘강호구가’
  • 금강일보 기자
  • 승인 2018.09.3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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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 명예교수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어버이 나하셔날 님금이 먹이시니
나흔 덕(德) 먹인 은(恩)을 다 갑프랴 하엿더니
숙연히 칠십이 러무니 할 일 업서 하노라

조선 중기 나위소(羅緯素, 1582~1666)가 지은 ‘강호구가(江湖九歌)’ 아홉 수 중 첫째수다. 어버이 낳으시고 임금이 먹이시니 낳은 덕 먹인 은혜 다 갚고자 하였으나 어느덧 칠십이 넘으니 할 일이 없다. 어버이와 임금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다.
그는 71세가 되어 오랜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인 나주로 돌아왔다. 거기에 수운정을 짓고 한가한 만년의 노후를 보냈다. 이때의 심경을 읊은 것이 ‘강호구가’다.

달 밝고 바람 자니 믈결이 비단일다
단정(短艇)을 빗기 노하 오락가락 하는 흥을
백구야 하 즐겨 말고려 세상 알가 하노라

다섯째 수다. 달 밝고 바람이 자니 물결이 비단 같구나. 조각배 비스듬히 띄어 놓아 오며가며 돋는 흥을 백구야 너무 즐거워하지 마라. 세상이 이런 즐거움을 알까 걱정이 되는구나. 달 밝은 밤, 물 위에 배를 띄워 즐기는 유유자적한 강호의 한가로운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같은 남인이면서 5년 연하인 윤선도(尹善道, 1587~1671년)와 특히 교분이 깊었다. 이 점에서 그의 강호생활은 윤선도의 어부생활과도 좋은 비교가 될 수 있으며 이 ‘강호구가’도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식록(食祿)을 긋친 후로 어조(漁釣)를 생애하니
헴 업슨 아해들은 괴롭다 하건마난
두어라 강호한적(江湖閑寂)이 이 내 분인가 하노라

마지막 아홉째 수다.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물고기를 낚으며 살아가니 생각이 없는 아이들은 어부의 생활이 괴롭겠다고 한다. 두어라 자연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것이 내 분수인가 한다. 벼슬을 그만두고 낚시로 소일하는 강호한적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조는 한가한 자연생활에서 느끼는 흥취와 성은의 고마움이 주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나위소는 나주 출신으로 호는 송암이다. 오랜 관직을 거쳐 말년에는 향리로 돌아와 1651년(효종 2년)에 지은 수운정에서 지냈다. 수운정의 강호생활에서 느끼는 물외한정((物外閑情)의 만년 삶을 노래하고 있다. 강호가도(江湖歌道)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나씨가승(羅氏家乘)’에 수록돼 전해진다.

내용상으로는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나 ‘어부가(漁父歌)’와 관계가 있으며, 형식상으로는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계통으로도 볼 수 있다.

그는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옥과 현감으로 체찰사 이원익을 도와 군량 조달에 힘썼다. 1636년 이후 풍기군수·원주목사 등을 거쳐 경주 부윤에 이르러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전남 나주시 삼영동 산 57-1번지에 그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비문은 미수 허목이 지었고, 글씨 또한 허목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떠나 유유자적 욕심 없이 살고 싶어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로망이다. 현대인에게는 한 번쯤 곱씹어 새겨둘만한 시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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