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허위조작정보라 일컫는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심각성이 우려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정치 분야는 지향하는 성향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사건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확대·재생산돼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평범한 시민의 한사람으로 우리 사회에 엿보이는 이념 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남북통일보다 지불해야 할 대가가 훨씬 크겠다는 암울함을 쉬 지울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이대로 방치했다간 사회가 감당해야 할 손해가 예상보다 클 것임은 자명하다. 사회 갈등 구조 속에서 허위조작정보가 통제되지 않은 전염병처럼 확산일로에 놓여있는 것이다. 본 편에서는 최근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의 사망과 관련해 신뢰에 의문이 드는 허위조작정보를 학문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1. 노회찬, 타살인가?

필자에겐 지난 2005년 서울에서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에서 부상당한 뒤 뇌출혈로 운명한 고(故) 전용철 농민 사건으로 노 의원을 두 차례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사건 부검에 대해 법의학적 사실을 설명했는데 그때 그분은 꼼꼼히 메모도 하고 때론 송곳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끝내는 그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격려해줬다. 또 필자 개인적 취향이긴 하나 그분의 정치적 평론은 아주 쉽고 명쾌해서 어떤 부분에서는 생각이 다르긴 했지만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면 ‘어떤 말을 내놓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불행히도 그는 드루킹 관련 수사 과정에서 세상과 작별했다. 그의 사망과 관련해 진행된 수사는 그 결론을 ‘자살’로 매듭졌다. 그런데 일각에선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투브 등 온라인 망을 통해 타살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2. 심장의 소리, 언제 멈췄나?

잘못된 뉴스 등에서 거론되는 노 의원의 타살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된다. 그 첫째로 사건 현장을 복기해보자. 투신한 노 의원은 ‘쿵’ 하는 소릴 듣고 달려갔던 아파트 경비원에 의해 발견됐다. 투신한 장소엔 얼굴을 많이 다친 사람이 떨어져 있었다. 경비원은 즉각 119에 신고했는데 구조요원은 그에게 “노 의원의 맥박이 뛰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경비원은 잠시의 침묵 뒤 “불행히도 맥이 끊어졌다”고 답했다.

일부 허위조작정보로 실린 뉴스는 이를 ‘살해 후 추락을 가장했다’며 타살 근거로 제시한다. 얘기인 즉, 추락 후 사망에 이를 때까지 일정기간 자동능을 가진 심장은 스스로 박동하고 여기에 출혈이 동반되면 사망에 이르는데 그렇다면 추락 당시 노 의원의 맥박은 촉진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법의학적으로 매우 잘못된 판단이다. 추락하면 변사자는 신체에 받은 외력 크기에 따라 우선 각종 골절과 함께 내부 각 실질장기인 폐, 간, 비장, 신장들이 파열된다. 심장도 마찬가지다. 파열된 심장은 펌프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데 추락하게 된다면 즉시 사망에 이른다. 필자 경험으론 추락 장소가 높으면 높을수록 심장 파열 빈도는 점점 높아진다. 이는 법의부검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이론이다. 잘못된 뉴스의 첫 번째 주장부터가 의학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인 셈이다.

#3. 출혈 없는 현장

두 번째 주장은 노 의원의 추락 현장에 출혈이 거의 없었다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통상 추락현장은 피범벅이 되거나 피바다가 돼야 한다는 게 요지다. 물론 현장에 가보지 않았고 어떤 현장 사진도 제공받지 못한 필자가 이를 반박할 근거는 없다. 다만 추락 시 외표에 좌열창, 천파창 같은 개방성 손상이 많지 않은 채로 급사할 땐 대부분 내부 골절이나 장기 파열로 사망한다.

그렇다고 추락 후 사건 현장이 완전히 피바다가 되는 건 아니다. 일부 사례에서 일반인들이 추락 현장의 혈흔을 식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가들이 자세히 살펴보면 비산된 많은 혈흔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심장 혹은 대동맥이 파열되면 급사하기 때문에 많은 외부 출혈을 볼 수 없다. 본 사건은 사후 현장 청소를 했다고 한다. 육안으로 추락지점에 출혈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인데 두 번째 주장 역시 법의학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4. 시신은 왜 그곳에?

세 번째 주장은 건물에서 6∼8m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발견된 점에서 비롯됐다. 이와 관련해 제시되고 있는 영상이 있는데 이를 보면 화재현장에서 유독가스가 많은 내부를 피해 사건 희생자가 창문에 매달리다 결국엔 추락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희생자는 다리로 떨어지고 건물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추락한다.

그러나 자살은 화재현장처럼 창문에 매달리는 것이 흔하지 않다. 상식적인 측면에서 보통 여러 가지 형태로 높은 건물 창문이나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몸이 건물에서 빠져 나가며 가슴과 배가 구조물에 쓸리고 머리부터 지면에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지면에 추락하는 신체부위는 아주 다양하다. 발로 떨어지는 족위추락뿐 아니라 신체 어느 부분도 가능하다. 머리로 추락한다면 두위추락, 등으로 추락할 경우 배위추락, 엉덩이로 떨어질 땐 둔위추락 등으로 구분한다.

또 추락하는 시신이 지면에 닿을 당시 인간 신체 자체가 탄력성을 지니고 있어서 지면에 달하는 부위에 따라 몸이 튕겨지기도 한다. 추락한 곳, 시신이 놓인 곳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이유다. 추락부위와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같다는 단정적 판단만으로 타살을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5. ‘경우에 따른’ 부검의 한계

언론에 보도된 뉴스를 되짚어봤을 때 사건 발생 당시의 심각성 혹은 중요성 때문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경험있는 법의관이 예외적으로 추락 현장에서 검안을 했다고 한다. 또 서울경찰청 과학수사요원 및 검시관이 신속히 현장을 조사했고 유서나 현장 CCTV 등을 과학적 방법으로 추가 확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필자 경험에 의하면 매뉴얼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모두 검토됐을 것이고 수사내용과 종합, 최종 법의학적 판단이 이뤄졌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변사현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법의학이나 감식학적 술기를 행함에 있어서 적어도 정치적 고려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건 우리나라 검시체계상 외국처럼 학문으로 무장되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법의관이 현장을 장악하고 검안해 규정에 따라 부검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지금의 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채 오늘처럼 ‘경우에 따라서’ 부검여부를 결정하는 원시적 방식이 지속된다면 허위조작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려진 잘못된 판단이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어지럽힐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서중석 소장은

-1957년 1월 3일 전남 여수 출생
-서울 양정고, 중앙대 의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 취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중부분소장·법의학부장·원장 (1991년부터 2016년까지 25년 재직)
-연세대·고려대·경찰대 외래교수, 대한법의학회·아시아법과학회 회장, 세계과학수사학술대전(WFF) 의장 등 역임
-대전보건대 14대 총장
-금강일보 제2기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
-수상: ‘유한의학상’, ‘서울시의사회 의학상’, ‘외교통상부장관상’, ‘대통령 표창’(과학수사대상), ‘홍조근정 훈장’, ‘몽골정부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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