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숙 대전글꽃초 교사

아침 독서하는 우리 반 사랑둥이들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마치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을 마주하는 농부처럼 푸근하다. 사랑스러움, 고단함과 뿌듯함 그리고 한 가지 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웃음보따리까지. 다들 어렵다고 고개 흔드는 초등 1학년이지만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아이들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 선생님! 화장실 가도 되나요?

아침 반찬으로 까마귀 고기를 먹고 오는지 다 아는 것을 하루 열두 번도 더 물어보는 스물여덟 명의 사랑둥이들. 묻고 나서 본인도 멋쩍은 쉬운 질문부터 딴 짓 하다가 듣지 못해서 묻는 질문까지 다양하지만 선생님은 안다.

그게 궁금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만 바라보던 그 눈으로 이제 선생님만 바라보는 1학년은 선생님이 '그래, 맞다' 해주면 세상 행복하고 마냥 안심이 되고 기분까지 좋아진다는 것을…. 선생님은 목이 텁텁하고 목소리가 갈라져도 그게 새삼 새로운 사실이라는 듯이 '응, 그렇지!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고 맞장구만 쳐주면 된다. 배시시 웃으며 흐뭇하게 돌아서는 너희들 보는 맛에 선생님도 중독이 됐나?

# 선생님! 수민이가 저랑 안 논다고 해요

1학년 선생님을 어렵게 하는 것은 바로 누가 누구를 해코지 했다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 선생님이 재판관 역할 해주기를 바란다.

누구는 혼내주고 누구는 사과하라고 정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관계 맺기를 배울 수 없다. 그리고 1학년 일이라고 그리 간단한 것도 아니고, 더불어 본인들조차 전후과정을 잘 기억하지 못하니 선생님이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면 보통 수사력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거기에 학부모님의 걱정과 해석까지 더해진다면…. 선생님은 갈 곳 없이 지치고 힘이 든다. 어떻게 하면 잘 도울 수 있을까?

선생님은 먼저 그 마음을 알아준다. ‘속상했겠다. 그런데 왜 그랬대?’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몰라요’다. 1학년 아이들은 그렇다. 아직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고 그러니 더 억울하다. ‘아마 무슨 이유가 있겠지.’ 이렇게 둘의 이야기를 시켜보면 사건의 끝에서부터 처음까지 조각이 맞춰진다.

선생님은 그냥 옆에서 ‘아! 그랬구나’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순간에 적당한 단어만 골라주면 된다. 서로 조각을 다 맞추고 나면 ‘그럼 서로 더 하고 싶은 얘기 있어?’ 이 말 한마디면 족하다. 아이들은 자동으로 ‘이런 것은 속상했다, 이것은 미안하다’ 등 자기 고백이 나온다. 1학년 아이들은 재는 것이 없다. 그러고는 상황 끝! 하하호호 시작!

이제는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친구의 마음도 조금씩 헤아릴 줄 알게 된 11월의 1학년들.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지만 나름의 가치관과 태도를 이뤄 가며 커가는 모습이 황금 들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마음이 자라는 것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1학년 아이들, 매일매일 성장하는 소리가 들리는 우리 교실, 소란스럽고 어수선해도 나는 1학년 선생 노릇하기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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