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 한 자, 글을 품은 목판 ···

나무 결에 魂을 싣다

대전 유성구 구즉동에 위치한 보덕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등산로를 따라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한 작업장.

“어르신! 글자를 칼로 파시네요...뭡니까?”

“각자라고 합니다”

“각자요?”

각자(刻字)는 쉽게말해서 글자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약수물을 먹고 우연히 건넨 한 마디가 또 한 분의 귀중한 만남을 가져다 주었다.

작업하느라 허름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을 목판에 새긴 서각가이자 고 이병철 전 삼성회장의 어록과 독립선언문을 새긴 유명한 분이셨다. 40여년 세월을 서각에 몰두한 전안원 선생(69)은 서각의 대가인 철재 오옥진 선생(중요무형문화재 106호)의 이수자로 대전을 비롯한 충청지역의 각자 보존의 표본이시다. 본래 글씨에 관심이 있었지만 혼자서 쓰는 글씨라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해서 자신의 능력을 일깨우기 위해 무작정 서울을 상경했다. 인사동 골목을 거닐다 당시 스승의 제자들이 전시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연(緣)이 되어 생동감 있는 스승의 글자를 배우게 돼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도심 속 새겨진 건물이름 글자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지어 주변경관을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정자(亭子)를 보면 이름이 없거나 잘못 씌여진 글자로 안타깝다고... 직업이 무섭다고 온 천지의 건물이나 정자에 씌여진 글씨밖에 안보인단다. 제대로 된 건물에 제대로 된 이름이 새겨져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름이 없는 정자를 볼 때면 말 못하는 벙어리 같은 느낌을 받아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단다. 행정구역과 주요시설 이름을 우리말로 짓기로 한 세종시도 한국적인 품격을 더해 멋있는 글자가 새겨졌으면 하는 게 전 선생의 바램이라고...

두꺼운 돋보기와 희긋희긋한 백발, 인고의 세월을 서각으로 보낸 전 선생은 오늘도 밤이 늦도록 자신의 서재이자 작업실 송탄미술관에서 누군가의 또 다른 말씀을 새기느라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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