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21일 대전 둔산동의 한 은행 지역본부에서 권총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은행 A 지점에서 현금출납을 담당하던 B 과장, 청원경찰, 운전기사 등 세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이 현금수송차량을 이용, 지점 영업자금을 지역본부로 수송하고 있었다.

사건은 본부 지하주차장에 도착 후 현금 3억 원이 든 두 개의 가방을 막 내리려 할 때 일어났다. 갑자기 어디선가 복면을 쓴 남성 두 명이 검정색 승용차에서 내린 뒤 꼼짝 말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그들이 쥐고 있었던 권총이 불을 뿜었다. 권총에서 발사된 세 발의 총탄 소리가 울리던 중 이들은 가방 1개를 탈취,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총격으로 B 과장은 총창으로 사망했고 사건이 발생 당일 저녁, 범인들이 사용한 차량만이 현장에서 약 1㎞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당시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마치 외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권총을 이용한 강도 사건이 발생한 것인데 본 편에서는 이 사건을 복기하면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초동수사, 왜 중요한가?

초동 수사는 신속성이 중요하다. 사건 전개 과정에선 권총 발사로 인해 매캐한 화약 냄새가 퍼졌다. 용의자들이 쏜 한 발은 주차장 천장을, 두 발의 총알은 B 과장 왼팔과 왼쪽 넓적다리를 향해 날아와 꽂혔다. 첫 번째 발사가 이뤄졌을 때 청원경찰, 운전기사는 현금 수송차 앞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러나 가방을 챙기느라 미처 피하지 못한 B 과장은 두 군데에 총창을 입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틈을 이용해 범인들은 자동차에서 손수레로 실어 놓은 현금 가방 1개만을 차량에 옮겨 싣고 현장을 빠져 나갔다. 이때 운전기사 역시 현금 수송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차를 후진시켜 범행 차량을 충격하는 등의 저항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때문에 범인들은 나머지 가방을 채 싣지 못하고 급히 도주했다고 한다.

사건내용만 보면 범인을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과거 현장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건물 내 보안시설은 물론 거리에서도 CCTV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기에 직접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영상 확보가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2. 망자가 남긴 신호

필자와 당시 법의학과장이던 이봉우 박사(現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는 숨진 B 과장을 공동 집도한 후 현장 조사를 실시, 당일 중요한 법의학적 사실을 수사기관에 고지했다.

우선 왼팔 총창은 몸통을 관통한 뒤 오른팔에 멈춘 소위 맹관총창이었다. 왼쪽 다리의 총창은 오른다리를 뚫고 나가는 관통총창이었는데 이 때 양쪽 폐와 대동맥에 치명적 손상을 형성했고 결국 피해자를 바로 옆 대학병원으로 신속하게 후송했음에도 운명을 달리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3. 송촌동에서, 데자뷔(Dejavu)

두 달 전쯤으로 기억된다. 대전 대덕구 송촌동에서 신원 불상인 두 명의 가해자가 도난 차량으로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충격하면서 총기를 강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탄환검사 및 부검 결과 탄환은 소견 상 분실된 총기와 동일한 종류일 것으로 판단됐다.

필자 경험으로 볼 때 일정 거리에서 권총으로 움직이는 피해자에게 정확히 총격을 가했고 그 총격에 쓰러지는 피해자 다리를 관통시키는 사격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숙련된 기술일까’. 물론 그 외에도 이 사건은 수사관들에게 가능한 많은 법의학적 그리고 법과학적 사실을 제공했다. 그런데 결론적으론 범인을 잡지 못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4. 반복된 브리핑, 떨어지는 집중도

사건이 발생한 뒤 지방경찰청 차장을 수사책임자로 C 경찰서에 수사본부가 차려졌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보교환, 감정결과 설명을 위해 필자는 여러 차례 수사본부를 방문했다. 수사본부는 어림잡아 약 200명 이상의 경찰관이 여러 서에서 파견나와 수사팀을 구성했다. 수사회의는 아침, 오후 그리고 늦은 밤까지 3회에 걸쳐 열렸다. 높은 국민적 관심 때문에 수사본부에는 고위직 인사와 정치인들이 다녀갔다. 필자는 이런 상황이 수사본부의 수사 집중을 어렵게 하진 않을까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높은 분들이 오면 의례적으로 브리핑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가 그랬다. 그들이 방문할 때면 수사본부는 차트를 만들어 브리핑을 했다. 지금처럼 파워포인트(PPT)로 브리핑하는 시기가 아니어서 보고용 차트를 만드는 것부터가 시간을 소요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그 방문이 격려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사본부는 수사보다 업무보고에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여기에 더해 많은 인원들 함께 하다 보니 이를 통제하고 업무를 지시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는 것처럼 보였다.

#5. 언론의 책임

언론에서도 지적했지만 더 큰 문제는 당시 수사에 별 관련이 없던 여러 사람들이 수사관에게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수사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형사는 소위 감(感)에 의한 수사를 하는 뉘앙스를 쉬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당시 과학수사라는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시절이라 이를 잘못됐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해당 형사계장이 부검현장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조차 문제가 됐을 정도이니 수사에 있어서 신속한 초동수사, 전문가 능력이 얼마나 집중되느냐에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에선 언론도 부실수사 양산에 일조했다고 본다. 마구잡이로 회의 장소까지 들어와 촬영하고 심지어는 보고서를 쓰는 장면이나 내용까지 영상화하는 등 그야말로 과거 폐해가 망라된 수사본부를 만들어 놨다. 이를 반복하다 경찰수사는 훗날 철저하게 혁신, 수사관들의 창의적 수사를 독려했고 수사를 잘 모르는 경우는 물론 잘 아는 지휘관들도 함부로 수사에 관여하던 그 전의 관행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옛 관행은 간혹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2008년 3월 말, 경기도 모처에서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수사가 미흡하다는 사회적 비판과 함께 수사본부에는 고위급 인사들이 방문, 서장과 본부 요원들을 질책했다. 우여곡절 끝에 범인이 붙잡히긴 했지만 법의학자로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형사들은 언론이 집중하는 사건뿐 아니라 세간의 무관심 속 묻혀있는 사건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한다. 누가 질책한다고 시늉삼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로서 범죄에 대해선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을 하게 된다. 간혹 살인 사건임에 틀림없는데도 이를 단순 사건으로 위장해 수사를 시작하는 기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린 그들을 계속 불신할 수밖에 없다.

#6. 현장에 남은 인간의 본능

대전 둔산동 은행 권총강도 사건 현장은 인간의 본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건 발생 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은행 각 지점들은 일정한 액수의 현금을 보유하고 초과 금액은 지역본부로 보내야 한다고 한다. 매뉴얼에 따르면 현금 수송은 반드시 ‘담당 책임자, 청원경찰, 그리고 운전기사가 함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고 그 날도 매뉴얼은 잘 지켜졌다고 본다. 그런데 이후 지역 사회에선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게 돈 가방인가’에 대한 쌔한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냥 현송 가방을 순순히 내줬으면 죽진 않았을 텐데 뭐 하러 돈 가방 지키느라 그런 일을 당했느냐’ 등이 주된 얘기였다.

하지만 필자는 현장조사와 부검소견을 종합해 볼 때 B 과장은 진정한 프로였다는 생각을 했다. 은행원으로, 또 담당 책임자로 차량에서 가방을 손수 내리다 고객이 은행에 맡긴 돈을 지켜야 한다는 무의식적 본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던 까닭이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계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맡은 일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교육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단련 받은 세대다. 그분의 희생을 돈과 연결시켜 폄하해선 안 되는 이유다.

#7. 범인 추적, 끝까지 간다

통상 현장을 가보지 않고 부검실에서만 시신을 대하는 경우 각종 손상이 어디 있고, 어떻게 사망한지에 대한 해석은 가능하다. 그러나 현장을 점검해 보면 총기가 어느 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발사됐고 피해자 동선은 어떠하며 그 상황에서 어떻게 손상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사망력을 규명하는 동안 경우에 따라서는 사망한 피해자에 대한 경외심을 갖기도 한다. 이젠 말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희생된 B 과장은 무의식적 상황에서 현금 수송 가방이 아니라 조직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담긴 몸짓을 필자에게 전하고 있었다. 부디 발전된 과학수사기법을 이용한 사건 재수사로 범인들을 체포하고 이미 오래 전 고인이 된 B 과장이 몸으로 했던 이야기를 마저 들어봐야 할 것이다.
 

◆ 서중석 소장은
-1957년 1월 3일 전남 여수 출생
-서울 양정고, 중앙대 의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 취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중부분소장·법의학부장·원장 (1991년부터 2016년까지 25년 재직)
-연세대·고려대·경찰대 외래교수, 대한법의학회·아시아법과학회 회장, 세계과학수사학술대전(WFF) 의장 등 역임
-대전보건대 14대 총장
-성균관대 교수·금강일보 제2기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現)
-수상: ‘유한의학상’, ‘서울시의사회 의학상’, ‘외교통상부장관상’, ‘대통령 표창’(과학수사대상), ‘홍조근정 훈장’, ‘몽골정부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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