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이와 같이 유연이 유선의 의견을 받아드려 달아날 결심을 할 때 밖에서 유영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유영이 곧 나가보니 양의의 아들 양용이다. 양용이 유영에게 말하기를
“자통(유영의 자)! 내가 유연 전하께 여쭐 말이 있어 자네 댁엘 찾아갔더니 여기 계신다하여 달려왔다네.”
유영은 양용을 곧장 불러들여 유연에게 인도했다. 양용은 유연을 만나 절하고 말하기를
“저는 어리석어서 세상사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난날 아버님께서 제갈승상의 임종을 지키실 때 승상께서 유언하신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승상은 유씨의 나라가 머지않아 망했다가 30년이 지나면 영특한 주인이 나타나 한나라를 부흥시켜 중원을 차지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신은 이 유언의 말씀을 들은 후 아직까지 잊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반드시 이 나라가 크게 떨칠 날이 돌아올 걸 믿고 있습니다. 하오니 유연전하께서는 제갈무후께서 남기신 이 말씀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유연은 양용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쓰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양공! 공은 내가 이토록 곤고할 때 가뭄의 단비같이 나타나서 용기를 주는 재주가 있구려. 계속 이야기 해 보시구려.”
“예, 전하! 신이 전하 7형제분의 관상을 보니 모두 다 범상치 아니하나 장래에 크게 쓰일 분은 유연 전하 한 분뿐이십니다. 지혜 가진 자는 아직 싹이 트지 아니한 씨알을 보고도 훗일을 미루어 짐작한답니다. 이러한데 제가 어찌 전하를 따르며 후일을 기약하지 아니하겠습니까? 고사에 보면 진나라 신생은 깊이 생각지 아니하고 위험한 곳에 남아 있다가 죽었으며 중이는 생각이 깊어 위험한 곳을 잠시 피했다가 다시 패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형주의 공자 유기도 계모의 모함을 피해 있으라는 제갈무후의 소중한 충고를 따랐기 때문에 후에 형주의 주인이 되어 유비 선제의 보살핌 속에서 살다가 편히 죽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고사를 알면서 어찌 전하를 따르지 아니하겠습니까? 천만번 죽을 고비를 당할 지라도 전하만을 따라 천하를 주유하겠습니다.”
“제갈승상의 유언도 맘에 들지만 양공의 말은 더욱 내게 힘과 용기를 주는 것 같으오.”
유연이 양용의 긴 말에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잠시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모인 사람들의 가슴에 작으나마 희망의 불쏘시개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모두 입을 다물고 숙연해 지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와서 닫는 작은 파동이 감동으로 물결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때 침묵을 깨우기라도 하듯이 밖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있으니
“여러분! 지금이 어느 때라고 그리 여유를 부리시오. 도망가지 않고 앉아서 죽겠단 것이요?”
좌중이 모두 바라보니 외치는 사람은 양부의 호위친병총령 전만년으로 진주 적도 사람이며 제나라 때 재상을 했던 전단의 후손이다.
유연은 불이 나게 안으로 들어온 전만년의 손을 덥석 잡고 울먹이기를
“전장군, 우리가 어찌해야 범의 아가리를 벗어나서 살 수 있겠소. 장군이 돕지 아니하면 살 길이 없을 것 같소. 그리고 또 문제가 하나 더 있소. 북지왕 형님께서 사직을 위해 돌아가시면서 아들 유요를 내게 남겨 주었소. 나는 형님의 유지를 받들어 이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데 어찌하면 될까요? 만약 이 아이를 데려가지 못한다면 나 또한 이곳을 떠날 수가 없소.”
유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만년은 유연을 한동안 의미 있게 바라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기를
“전하께서 낳으신 왕자님이 지금 밖에 계시는데 분부말씀이 아직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관장하시는 감군에 대해서도 말씀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어린 조카를 맡아서 그 조카와 생사를 함께 하신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전하의 어질고 깊은 마음을 신이 알겠습니다. 반드시 후일 만백성이 우러르는 주상이 되고도 남겠나이다.”
“전장군은 어찌 내 면전에서 그와 같은 과분한 말씀을 하시오. 내 전장군의 깊은 뜻은 짐작하니 오늘은 우리가 어찌해야 살길이 열리는가 그 말씀을 해 주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