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웅순의 시조한담] 익종의 ‘고울사 월하보에’
  • 금강일보
  • 승인 2018.12.0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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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 명예교수
신웅순

벽도화(碧桃花)를 손에 들고 백옥잔(白玉盞)에 술을 부어 우리 성모(聖母)께 비는 말씀
저 벽도화 같으소서 삼천년에 꽃이 피고 삼천년에 열매 맺어 꽃도 모진 열매도 무진 무진무진 장춘색(長春色)이라
아마도 요지왕모(瑤池王母)의 천천수(千千壽)를 성모께 드리고저 하노라

‘벽도화’는 신선이 먹는다는 과실로 반도(蟠桃)를 가리킨다. 반도는 삼천년마다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선경에 있는 복숭아다. ‘백도화’는 백옥으로 만든 술잔을, ‘성모’는 거룩하신 국모로 익종의 어머니 순원왕후를 가리킨다. 순원왕후는 순조 2년에 왕비로 책봉된 김조순의 딸이다. ‘무진무진’은 끝이 없음을, ‘장춘색’은 변함없는 봄빛을 말한다. ‘요지왕모’는 곤륜산에 산다는 선계의 불로장생의 어머니 성스러운 서왕모를 말하며, ‘천천수’는 천수를 강조한 말이다.

익종이 동궁으로 있으면서 임금 대리를 하실 때 어머니 순원왕후의 진찬연(進饌宴)에 이 노래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진찬연은 궁중의 크고 작은 잔치를 말한다. 삼천년에 한 번씩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신선들이 먹는 벽도화와 선녀 서왕모의 천년수를 어머니께 바치며 장수를 빈 사설시조다.

익종은 대리청정을 통해 세도정치를 억제하고 왕권을 회복하고자 했으나 21세의 젊은 나이로 훙서(薨逝)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만 비운의 세자다.

이름은 영, 자는 덕인, 호는 경헌, 순조의 세자, 헌종의 아버지인데, 추존(追尊)하여 익종이라 불렀다. 익종은 예술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이 진찬연에 사설시조와 함께 지어 바쳤다는 또 하나의 시조가 전하고 있다. 춘앵전에 대한 노래다.

고울사 월하보(月下步)에 깁사매 바람이라
곳 ?해 셧는 태도 님의 정을 맛져셰라
아마도 무중최애(舞中最愛)는 춘앵전(春鶯囀)인가 하노라

‘월하보’는 달아래 거닐다의 뜻이고, ‘깁사매 바람’은 비단 옷 소매로 바람을 가르며서 거닌다는 뜻이다. ‘무중최애’는 춤 가운데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 ‘춘앵전’은 봄 꾀꼬리가 노래한다는 뜻으로 진찬연에서 추는 춤의 이름이다.
곱구나 달 아래 비단 옷 소매로 바람을 가르며 거니는구나, 꽃 앞에 서 있는 자태 님의 정에 맡기었도다. 아마도 춤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봄 꾀꼬리, 노래하는 앵무춤인가 하노라.

이 춤은 순조 때 창작된 향악 정재의 하나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보령 40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노래로 이른 봄날 아침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무용화한 춤이다. 이 춘앵전은 지금까지도 전승되어오고 있는 춤이다.

중국 당 고종이 버드나무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를 보고 감동하여 악사 백명달로 하여금 그에 어울리는 음악과 춤을 만들게 했다는 고사가 전하고 있다. 여기에 창의를 더해 만든 순수 창작곡이 바로 효명세자의 춘앵전이다.

이 춘앵전은 6자 가량의 화문석에서 비리·탑탑고·타원앙장·화전태·낙화유수·여의풍 등의 춤사위를 연출한다. 이 중 화전태의 춤사위는 두 손을 뿌려 뒤에 내려 여미고 두 무릎을 굽혀 오른발을 들었다 놓고, 왼발을 들었다 놓는 동작을 말하는데 ‘꽃 앞에서 자태를 짓는다’는 뜻으로 춘앵전의 백미라고 한다. 위 시조는 바로 화전태의 춤사위를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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