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실무에서 일을 하다보면 종종 갓 태어난 아이들이 세상의 밝은 빛을 보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신생아나 영아는 선천성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자기방어력이 현저히 약해 감염으로 사망하기도 하지만 때론 직계존속에 의해 생명을 저버리기도 한다. 영아살인의 경우 분만 직후 화장실에 버려지는 단순 유기부터 질식시켜 강변에 유기하는 사례까지 다양한데 어떤 부모들은 “분만 직후 숨을 쉬지 않았다”고 뻔뻔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본 편에서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을 복기하면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싸늘한 아이, 남겨진 흔적
법의관은 신생아 혹은 영아가 사망했을 때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부검을 실시한다. 우선 성인과 달리 키, 몸무게, 발바닥 길이 등을 잰 후 머리카락 길이, 코와 귀 연골을 만져보면서 미숙아인지, 성숙아인지를 파악한다. 태아로 추정되는 경우는 재태기간(在胎期間)까지 추정한다. 타살이 의심되면 피의자인 부모가 미숙아임을 핑계로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나아가 조직검사를 거쳐 각 장기의 성숙도를 검사하거나 피부조직 발육상태를 점검하기도 한다.

#2. 생산아, 사산아
일반적으로 살아서 태어난 생산아와 죽어서 태어난 사산아는 법의학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생산아는 가슴과 배 둘레를 비교해 보면 숨을 쉬었던 이유로 가슴이 터 크다. 특히 탯줄은 법의학적 판단에 있어서 많은 것들을 제공한다. 단면에서 출혈이나 염증 등의 소견도 볼 수 있고 병원에서 분만한 후 사망하는 경우 탯줄이 의료인의 술기에 의해 잘 처리돼 매끈하다. 전문적으로 결찰된 소견을 볼 수 있지만 집에서 홀로 분만하면 앞서 언급한 특징들을 볼 수 없으며 절단면은 불규칙하고 거침을 확인할 수 있다. 생리적 황달, 발바닥 프린팅, 주사침흔 등도 판단에 큰 도움을 준다.

특히 부검을 하게 되면 생산아와 사산아 구별은 더욱 명확해 진다. 숨을 쉬었다면 폐는 팽창해 흉강을 채우게 되는데 이로 인해 횡격막도 6∼8늑골까지 하강하고 폐나 위장관을 물에 띄우면 공기가 들어있어 수면 가까이 뜨게 된다. 경우에 따라선 위장관에서 우유를 먹었던 흔적도 볼 수 있고 보다 전문적인 소견들이긴 하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큰창자에서 태변보다 이행변을 보게 된다. 간혹 부패가 되면 이러한 소견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폐에 대한 현미경 검사를 통해 허파꽈리가 확장된 것으로 호흡 여부를 체크해 볼 수도 있다.

#3. 영아살인
통상 1세 미만의 영아살인은 형법 제251조에 따라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하는 행위’로 규정돼있다. 특히 분만 중 혹은 출산 24시간 내에 살해하는 경우를 ‘신생아살인’이라고 한다. 신생아나 영아살인의 원인은 다양하다. 물론 원하지 않았던 아이가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강간을 당한 후 임신했거나 미혼모, 불륜에 의해 생긴 아이들, 그리고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양육하기 곤란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드물게는 심한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도 있다. 그러나 영아살인을 일반 살인과 다르게 구별하는 것은 산모가 임신, 분만 그리고 수유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정신적 균형을 잃고 비정상적 상황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4. 서래마을, 범인은 누구인가?
지난 2006년 7월 중·하순경,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한 빌라에서 두 명의 영아가 냉동고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이 집에 거주하던 프랑스 국적의 A 씨는 고국으로 휴가를 다녀온 뒤 배달된 음식 재료를 보관하려고 냉동고 문을 열었다가 쇼핑백 안에 비닐봉지로 쌓인 채 보관된 영아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그는 2005년 8월부터 부인, 아들 두 명과 함께 이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2006년 6월 말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휴가를 떠났다가 회의 참석을 위해 7월 중순, 혼자 입국했고 곧 가족과 다시 합류할 계획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방배경찰서는 신속하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은 현재 한국법의학서울의원장을 지내고 있는 전석훈 박사가 집도했고 사건 중요성에 따라 필자가 백업을 하게 됐다.

두 아이는 모두 전형적인 신생아살인의 소견을 보여줬다. 부패나 건조 진행된 정도가 상이하고 체격도 달라 쌍둥이의 가능성은 일단 배제했다. 신체조건으로 보아 모두 만삭으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됐는데 두 아이 모두 탯줄의 절단면은 매끄럽지 못하고 길이가 들쑥날쑥해 출산 과정이 비(非)의료인에 의해서 처리됐을 것으로 판단됐다.

다음은 살아서 태어났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시신이 부패해 육안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현미경 검사를 시행, 결국 허파꽈리가 확장된 소견이 나타났다. 또 대장에는 태변이 가득했으며 위에서 우유 같은 음식물은 관찰되지 않았다. 결국 두 아이 모두 살아서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살해된 전형적인 신생아살인 사례였다.

#5.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위에 언급한 법의학적 이론에 의하면 범인은 너무나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여러 정황상 두 아이의 엄마가 관여된 죽음이었다. 전 박사는 부검 전반을 설명했고 필자는 수사관들에게 법의학적으로 신생아살인의 특징을 전달했다.

우선 집주인이면서 신고자인 A 씨의 구강에서 유전자검사를 하고 부자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먼저 임을 알려줬다. 두 아이 시신은 부패정도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쌍둥이는 아니어서 적어도 1년 이상 시간을 두고 사건이 발생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오랫동안 그 집에 거주했거나 드나들던 여성들이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빌라 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빗, 칫솔 등의 증거를 수집해 여성 유전자 형이 나오는 경우 친자관계를 확인하도록 요청하고 희생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것을 당부했다. 특히 용의자는 집에서 의료인 도움 없이 적어도 두 차례 이상 자가 분만을 했기 때문에 분명히 산과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녔던 의료기관에 대한 수사도 병행할 것을 주문했다.

수사관들은 우리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치밀하고 과학적인 수사를 신속히 전개했다. 이와 맞물려 국과수 유전자분석실의 감정결과는 우리의 예상대로였다. 신고자 A 씨와 두 아이에서 부자관계가 성립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또 빌라 내에서 채집한 빗, 칫솔 및 귀지개 등에서 아이들과 모자관계가 성립하는 여성 유전자형을 확보했다. 여기에 이어서 최종적으로 용의자가 다녔던 병원에서 확보한 병리학적 증거물에선 용의자, 사망한 아이들의 친자관계를 확정하는 유전자 분석결과가 나왔다.

#6. 한국-프랑스 진검승부
당시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문화재 반환문제로 약간의 외교적 갈등이 있었다. 프랑스 여론은 한국을 문화적 수준으로 볼 때 중요한 유물 관리를 맡길 수 없는 저개발국가 정도로 폄훼하는 분위기로 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발생한 이 사건은 워낙 충격적이어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 언론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런데 우리의 부검이나 유전자 감정이 그들 수준에 비춰볼 때 지나칠 정도로 신속하게 결과를 생산했기 때문에 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특히 용의자 주변 지인들이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이 최근 임신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의문은 더욱 증폭됐다.

그러나 우리 예측대로 용의자가 산과적 문제로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국과수 유전자 팀은 수술 받은 병원에서 확보된 파라핀 블록의 조직에서 동일 유전자형을 확보, A 씨의 부인을 진범으로 지목하면서 사실상 감정의 확실성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 프랑스에서 두 사람의 전문가가 우리나라를 방문해 필자와 대면하게 됐다. 그들은 처음에 프랑스가 우리와는 다르게 법의학 및 법과학적 감정이 각각 다른 기관에서 이뤄지는 차이점을 설명하더니 자국의 법과학적 감정 수준이 아주 높다는 등 프랑스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하지만 필자는 부검 의뢰된 두 아이가 전형적인 신생아살인 소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사관들에게 수사방향이 담긴 메모장과 과학적으로 감정된 유전자 결과를 전달한 것을 충분히 이야기했다. 물론 시신이 안치된 냉장실이나 유전자검사실도 모두 보여줬다.

그들 전언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부검은 한 달 이상, 유전자는 거의 두 달 정도 지나야 결과를 알려주는 감정 환경 때문에 한국의 신속한 결과에 강한 의문을 가졌다가 국과수를 방문한 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후일담이지만 지난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법과학학술대회에서 다시 만난 그들과 다른 프랑스 법과학자들은 그 사건 이후 강력사건 발생 시 자국 수사기관으로부터 신속한 감정을 요구받게 됐다는 불평 아닌 불평을 전해 들었다.

양국 전문가들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팽팽하게 시작된 한국과 프랑스의 진검승부는 의외로 쉽게 승부가 갈렸다. 프랑스에서는 우리 측이 제공한 아이들의 검체로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역시 결과는 같았고 프랑스 수사당국이 추가 수사를 진행, 한 명의 아이가 더 희생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나중에 여러 경로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범인인 아이들 엄마는 임신 및 분만과 관련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심리상태 분석 결과는 우리나라에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다. 연유야 어찌됐든 서래마을 신생아 살인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7. 과학수사의 쾌거, “고생하셨습니다”
그때 언론은 “대한민국 과학수사의 승리”라고 국과수를 칭찬했다. 유전자 분석 팀 역시 여러 신문에서 대서특필됐고 수상의 기쁨도 누렸다. 사실 두 아이들의 부패된 시신은 물론 각종 증거물에서 신속한 유전자형을 확보하는 작업은 실로 엄청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병원에서 제공된 파라핀 조직에 대한 유전자형 분리는 당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신속하고 정확한 최고의 감정결과였다.

반면 시신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어 수사할 수 있도록 모든 방향을 제시한 법의학분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많이 미안했다. 필자는 당시 법의학 및 유전자 분야를 통괄하는 법의학부장이었기 때문에 법의관을 챙기기보다 유전자분야에 종사하는 감정인들의 성공을 더 축하해 줬던 기억이 난다.

암 환자가 병원에 내원했을 때 내과의사가 진단해 방사선검사를 거쳐 확진한 후 외과의사가 암을 절제, 성공적 치료를 하면 우리는 어느 한 분야에 있는 의료진만을 칭찬하지 않는다. 법의실무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정말 노력한 분들이 장막 뒤에 가려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특히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험한 화재 혹은 폭발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감정행위를 수행하는 등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의 노력은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함께 고생하셨다”는 이 위로의 한 마디가 늘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답례론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과학수사의 팀워크를 더 튼튼히 하고 한 차원 높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 서중석 소장은
-1957년 1월 3일 전남 여수 출생
-서울 양정고, 중앙대 의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 취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중부분소장·법의학부장·원장 (1991년부터 2016년까지 25년 재직)
-연세대·고려대·경찰대 외래교수, 대한법의학회·아시아법과학회 회장, 세계과학수사학술대전(WFF) 의장 등 역임
-대전보건대 14대 총장
-성균관대 교수·금강일보 제2기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現)
-수상: ‘유한의학상’, ‘서울시의사회 의학상’, ‘외교통상부장관상’, ‘대통령 표창’(과학수사대상), ‘홍조근정 훈장’, ‘몽골정부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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