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민 갈마지구대 순경

초등학교 시절 지우개는 필통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학용품이었다. 어린 시절에 쓰는 글씨는 자주 틀리곤 했다. 잘못된 글씨를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나면 그 곳에 새롭게 글씨를 써넣곤 했다.

단지 지우개는 글씨만 지우는 용도로 쓰인 것은 아니다. 미술시간에 더 많이 쓴 기억이 난다. 원체 손재주가 없는 탓에 그림을 그리는 데 지우개를 많이 사용했다. 지우개로 잘못 그린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신기하게도 지우개로 잘못된 그림을 지우면 하얀 도화지에 새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연필 대신 볼펜을 쓰면서 잊고 지낸 지우개를 얼마 전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약 20년 만에 다시 사용해 봤다. 열심히 계산문제를 풀다가 틀린 부분이 나와서 지워봤다. 지우개로 잘못된 공식을 지우고 다시 새롭게 문제를 풀어 정답을 맞힐 수 있게 됐다. 옛 기억처럼 지우개로 지워진 연습장은 새 것처럼 새로운 글씨를 쓰고 더 나아가 정답까지 맞힐 수 있게 됐다.

경찰도 범죄에 대해 지우개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경찰은 범죄자를 검거하고 처벌하는 데 주력해 왔다. 범죄자 처벌과 교정을 통한 재사회화로 범죄 근절에 힘쓴 것이다.

더 나아가 경찰은 피해자보호 중심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찰은 피해자보호를 통한 지우개 같은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범죄에 대한 피해로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들을 돕고 그들의 아픈 기억을 지우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2015년 ‘피해자 보호 원년’을 선포하고 전국 경찰서에 피해자전담경찰관을 배치하는 등 범죄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은 범죄피해자 임시숙소 지원, 보복의 우려가 있는 피해자에게는 신변보호 조치, 피해자 야간 조사 시 여비 지원, 강력범죄 현장 정리 등의 지원뿐만 아니라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에 따라 경찰에서부터 검찰,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다양한 기관에서 생계비, 구조금, 장례비, 치료비 등 경제적, 심리적, 법률적 지원 등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사건 담당부서와 피해자 간 중재·조율도 담당하고 있으므로, 수사 시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2018년 4월 17일 국가경찰의 임무 및 경찰의 직무범위에 범죄피해자 보호를 명시하는 경찰법 및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공포, 시행됐다. 이번 개정을 통해 경찰은 범죄 피해자 보호기관으로서 적극적인 현장 대응이 가능하고 인력과 예산운영이 가능하게 됐다.

경찰은 이제 단순히 범죄자 처벌과 재사회화를 위한 역할을 넘어서 범죄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지원까지 해주는 국민의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다시는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범죄 피해로 인하여 슬퍼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시기이다. 또한 경찰로서 피해자의 눈물과 아픈 기억을 모두 지워주는 지우개 같은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하여 국민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국민의 동반자로서 비전을 달성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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