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사회부장

이기준 사회부장

얼마 전 발전소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사고로 생을 마감한 스물다섯 청년 ‘김용균’이 영면에 들었다. 장례가 치러지기까지 62일이 걸렸다. 그 사이 정부와 관련 업계가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았고 국회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 법 개정안은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 작업, 허가 대상 물질의 제조·사용 작업 등 유해·위험 작업의 사내 도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또 도급인이 수급인 또는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범위를 ‘도급인의 사업장 및 도급인이 지정·제공하는 장소로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로 규정했다. 아울러 원청 사업자가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가 22개 위험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로 확대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 수준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하게 한 원·하청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현행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유지했지만 사고 재발을 막는 차원에서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같은 죄를 범하면 그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토록 했다. 또 사망 사고 발생 시 안전책임자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함께 부과하는 벌금의 상한선도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상향했다. 해당 법의 보호 대상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했다. 하청 노동자 산재사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27년 만에 수술대에 올려놨고 김용균은 ‘죽음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이 작은 진전을 가슴에 안고 떠났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발전사 노동자 40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는데 이 중 37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 사고를 일으켜 ‘윤창호’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박 모 씨에게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됐다. 재판 과정에서 박 씨 측이 ‘음주가 아니라 부주의(애정행각) 때문에 벌어진 사고인 만큼 (형량이 낮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적용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가 여론의 ‘괘씸죄’까지 추가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경우 법정형이 ‘현행 1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높아졌다. 또 음주운전 2회 이상 적발 시 징역 2~5년 또는 벌금 1000만~2000만 원으로 처벌이 강화됐다.

윤창호법과 김용균법은 지난 한 해를 뜨겁게 달궜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살인행위’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고 김용균법은 ‘죽음의 외주화’에 제동을 거는 의미 있는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피해자 이름을 딴 이 ‘네이밍 법안’들의 유통기한이 벌써 도래한 것 같아 씁쓸하다. 국민적 공분 속에서 윤창호법과 김용균법이 빛을 보게 됐지만 법이 개정되고, 해가 바뀌어도 별반 달라지는 게 없다. 유명 연예인들을 비롯해 음주운전 적발 소식이 끊이지 않고 대전에선 얼마 전 음주뺑소니 사망사고까지 났다. 금형 틀에 끼고 폭발사고로 노동자들이 숨지는 등 산재사고도 줄어들 줄 모른다. 제2, 제3의 윤창호, 김용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진실법(민법 개정안, 친권자동부활 금지제),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 의료사고 자동 조정절차 개시), 태완이법(형법 개정안, 살인죄를 저질러 법정 최고형이 사형인 경우 25년으로 돼 있던 공소시효 폐지), 조두순법(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성범죄자에 대한 음주 등 심신미약 이유 감형 금지) 등 한 때 반짝했다가 서서히 잊혀가는 ‘네이밍 법안’들처럼 윤창호와 김용균이 국민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길 기대해 본다. 꽃다운 나이에 활짝 펴보지도 못 하고 허망하게 이승을 떠난 젊은이들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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